천안에도 노면전차의 시대가 올까요? ②
노면전차가 이상적이고 합리적으로 설계된 만큼 주변 여건이 좋아지고, 그 청사진대로 지어지기만 한다면 천안 시내 교통이 좋은 방향으로 달라지리라는 기대가 있다. 그래서 나는 노면전차 건설을 환영한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노면전차가 처한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 2010년대 중반부터 지자체들이 노면전차 건설 계획을 쏟아냈지만, 사람들을 싣고 나르는 노선은 아직 없다. 최근 국토교통부에서는 노면전차 사업을 진행할 때는 BRT 건설과 비교해서 정책 타당성과 경제성이 있어야만 노면전차 사업을 승인한다고 밝혔다.
노면전차가 현실에서 처한 문제들을 보니 노면전차를 무작정 예찬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노면전차를 지으면서 벌어질 여러 문제를 검토하고자 한다.
돈은 인류가 사라질 때까지 끝나지 않을 고민이며, 노면전차도 결국은 돈이 돼야 짓고 달린다.
지역 시민단체들은 (개발 자체에 관성적으로 반대하는 성향과 더불어) 이 문제가 눈에 너무 띄어서인지 천안경전철에 이어 노면전차도 부정적으로 보고 있으며, 노면전차보다는 BRT를 선호하는 듯하다. 적어도 현상황에서는 이런 시각을 기우나 강짜라고 치부할 수 없어 보인다.
당초 노면전차가 한국에서 처음 알려졌을 때는 경전철 대비 낮은 건설비가 이점으로 꼽혔다. 경전철이 km 당 500억 원 가까이 든다면, 노면전차로는 같은 구간을 200~300억 원으로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물가 상승과 건축비 상승, 고규격 기술 도입 등을 반영하다 보면 경전철 건설비와 비슷한 수준이 될 수 있다.
대전 2호선 사업방식을 노면전차로 바꾼 이유 중 하나는 자기부상열차 사업비 절반 수준인 7,492억 원으로 건설할 수 있으리라 예측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가선 차량 도입, 일부 구간 지하화, 정거장 추가 등 시민 요구에 맞춰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대전 노면전차 최종 건설비는 1조 5,069억 원이 되었다. 물가와 인건비 상승을 고려해도, 1조 3,232억 원이 든다고 예측됐던 자기부상열차보다 싸게 지을 수 있다는 주장이 무색해졌다.
천안 노면전차 중에서 가장 먼저 착공할 것으로 예상되는 노선1은 km 당 건설비가 대전 2호선의 1.5배를 넘는다. 왜 그럴까? 노선1에서 안서동 대학가와 원도심 구간은 왕복 2~4차선 도로거나 길이 아예 없다. 천안시는 안서동 구간 도로를 넓히고, 원도심은 노면전차를 지하에 까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도로 확장이든 지하화든 건설비는 더 들 수밖에 없다.
천안역과 봉서산 횡단 구조물은 탕정2지구 교통 대책의 하나로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사업비를 일부 부담할 것이기 때문에 시청에서는 전체 사업 건설비가 내려가리라고 낙관하기는 하지만, 건축비가 무섭게 상승하는 요즘에 그것이 극적으로 내려갈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노면전차를 마냥 돈 먹는 하마로만 보면 그것 또한 곤란하다. 지난 글에서 천안 시내버스는 민영제인데도 상당히 많은 시 예산을 들여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올해는 이 보조금이 5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회차지와 남부공영차고지 건립 예산은 별도로 나가며, 아직 결론 나지 않은 준공영제나 공영제는 어떤 방식이 되든 지금보다 투입 예산이 더욱 늘 수밖에 없다. 이럴 거면 차라리 노면전차를 짓고 나서 시내버스를 철도 환승 편리에 초점을 맞춰 축소 운행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장기적 관점에서 노면전차는 시내버스보다 경제성이 높다. 대전 2호선에 운행되는 현대로템 수소 트램은 1편성당 5량으로 좌석 50석 포함 최대 305명이 탑승하는 데 비해, 11m 초저상 버스 정원은 46명이고 2층버스나 굴절버스를 도입해도 100명을 넘기지 못한다. 노면전차 기사 한 명만으로 버스보다 3배에서 6배 더 많은 교통량을 처리할 수 있다. 시내버스보다 인건비와 차량 구입비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여기에 노면전차 차량은 내구연한이 25년에 안전 검사를 받으면 연장이 가능해 차량 구입비가 더욱 줄 것이고, 노면전차와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제대로 연계되면 네트워크 효과로 더 많은 사람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한다면 노면전차가 초기 건설 비용은 BRT보다 높을지라도, 장기 유지비에서는 BRT보다 저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비용 문제는 초기 비용과 장기적 비용 중 어디를 더욱 중시하느냐에 따라 의견이 갈릴 수 있다.
대전 2호선은 삽 뜨기까지 28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했다. 천안은 노면전차를 다 짓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까?
철도는 정치적 논란과 경제성에 따라 사업이 한없이 늘어진다. 지금 세대에 생소한 노면전차는 더더욱 그랬다. 대전 2호선을 자기부상열차에서 노면전차로 바꾼 시장은 시민 반발에 직면해야 했고, 시장 선거가 다가올 때마다 노면전차 원점 재검토가 주요 공약으로 나왔다.
새로운 시장들이 마음잡고 노면전차를 밀어붙이려면 법제와 경제성이 발목을 잡았다. 오랫동안 교통수단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터라 노면전차에 관한 법적 성질마저 불분명했다. 노면전차를 궤도 교통수단으로 인정하고, 노면전차 건설에 필요한 법제를 새로 정비하는 데에 긴 시간이 걸렸다.
경제성 부분에서는 그나마 문재인정부에서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해 줘서 절차가 빠르게 진행되나 싶었지만, 건축 자재비와 인건비 상승으로 사업비를 새롭게 계산하고 기획재정부와 합의하는 절차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끝나기까지 대전 시민은 28년을 기다려야 했다. 건설 기간 4년짜리 사업을 삽 뜨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신교통수단을 들일 것을 염두에 두고 도시를 설계한 위례와 동탄에서도 진척은 더뎠다. 정부가 2기 신도시 개발계획에서 위례와 동탄신도시에 신교통수단 도입을 공언한 때는 각각 2008년과 2009년. 하지만 위례선은 민자 유치가 무산돼 공공사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동탄도시철도는 광역철도 동탄인덕원선과 겹친다는 이유로 정부가 추진을 머뭇대면서 시간이 지체되었다. 결국 위례선은 2021년에서야, 동탄도시철도는 2025년에서야 첫 삽을 뜨게 되었다. 구상 발표부터 완공까지 20년이 걸린 셈이다.
노면전차 후발주자 천안은 법제가 정비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행착오가 덜할 것으로 보이지만, 그게 끝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철도는 건설 계획이 나올 때부터 대략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대규모 개발 사업이기 때문에 계획을 승인받고 타당성을 검증하는 등 많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거기에 이제는 BRT와 사업성 비교도 해야 하니 계획 과정에서 꼼꼼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리고 검증이 다 끝난 노면전차가 삽만 뜨면 되는 상황에서 노면전차에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이 시장이 계획을 엎어버린다면... 그건 정말 상상하기도 싫다.
돈과 시장 의지만 있으면 노면전차는 완성되는 걸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여론.
요즘 교통공학계에서는 자가용 이용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교통수요관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가용 이용을 불편하게 하거나 자가용 이외 교통수단을 편리하게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노면전차는 도로 한 가운데를 달리기 때문에, 자가용 이용은 불편해지고, 일반 시내버스보다는 수준 높으면서 지하 도시철도보다는 접근성 좋은 대중교통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론적 측면에서는 최고의 선택 중 하나...
라고 하는데, 대중 인식과 자가용 중심 도심 교통 구조와는 정면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다. 노면전차가 철거되지 않는 한 왕복 2차선을 영원히 잡아먹는다면 반발이 안 나올 수가 없다. 안 그래도 막히는 길이 더 막힐 게 뻔하니까. 그렇게 자가용 이용자, 혹은 상권 침체에 민감한 소상공인은 민원 폭탄을 날리게 되고, 안 그래도 격무 부서로 유명하다는 시청 교통과는 더 많은 민원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요즘들어 의욕 있게 추진한 대중교통 친화 정책이 여론에 밀려 후퇴하는 사례가 종종 보인다. 연세로는 올해 첫날부터 자가용 통행을 금지할 수 있는 교통 시설인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해제됐다. 차도를 줄인 만큼 인도를 넓히고, 차도는 시내버스와 셔틀버스만 통행이 가능하게 한 뒤로 보행 환경과 교통 흐름이 개선되는 효과가 분명히 나타났다. 하지만, 연세로 주변 상인들은 신촌 상권 침체 요인을 대중교통전용지구 지정 때문으로 여겼고, 상인들이 해제를 요구했다.
상대적으로 자가용 이용 여건이 더 좋으면서 중앙버스전용차로에 익숙하지 않은 지방은 저항이 더욱 심하다. 광주 수완지구나 목포 남악신도시 등에서는 택지지구 교통 대책으로 버스전용차로를 만들었지만, 그 길을 달리는 버스는 하나도 없고 민원만 빗발치는지라 결국 전용차로들은 철거됐다. 대전 – 세종 BRT은 건설 과정에서 건설 구간 상인들의 강경한 반대에 직면했고 결국 담당 공무원이 순직하는 사례도 있었다. 그나마 있는 곳에서도 지역 언론들은 BRT 유지를 탁상행정쯤으로 치부하며 BRT 무용론을 줄기차게 주장한다.
그런데 눈치를 챈 사람들은 버스 전용 시설에서 교통수요관리 정책에 대한 저항이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노면전차는 80년대 이후 철거된 사례가 없다고 한다. 노면전차가 BRT보다 자가용 이용자로부터 저항을 덜 받으리라는 점은 또 하나의 강점이다.
시내버스 전용 시설들은 규제만 없다면 일반 자동차가 그 길을 달리는데 아무 문제가 없으므로 BRT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면 자가용 이용자들의 불만은 더욱 커진다. 반면, 노면전차는 법적으로 철도 교통수단이고, 신호나 궤도, 분리대 등 각종 설비가 버스 전용 시설과 차별점이 있어 자가용이 해당 차로를 주행하기 어렵다. 전용 시설들은 사람들이 노면전차를 철도로 인식하는 요소가 되며, 역 주변 주민들은 역세권 효과를 노리고 노면전차 건설을 반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그걸 노리는 사람들은 지하화를 원하겠지만...)
두 사람이 충돌을 불사하고 서로를 향해 차를 몰며 돌진한다. 누구도 핸들을 꺾지 않으면, 결국 충돌한다. 그러나 한쪽이 핸들을 꺾으면 누군가는 겁쟁이가 되겠지만, 둘 다 죽을 일은 없다.
노면전차가 지나는 구간에는 여러 교통계획이 충돌하고 있다. 특히, 중부권 동서횡단철도와 수도권 전철 독립기념관 연장은 시 차원에서 나름대로 힘을 기울이고 있는 숙원 사업 중 하나다. 독립기념관역은 20년 전부터 선거 때만 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공약이었고, 독립기념관역 불씨를 살려보고자 여러 지자체와 손을 맞잡고 중부권 동서횡단철도를 추진하게 되었다.
하지만, 두 역점 사업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현실성이 없다. 아직도 철도의 이로움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수도권 고밀도 택지지구가 많은 상황(이를테면 김포라던가, 한강신도시라던가, 골병라인이라던가...)에서, 독립기념관이 아무리 의미 있는 공간이라 한들 다른 사람 보기에는 농촌에 있는 관광지를 위해 수도권 전철을 연장한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4년 전에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을 발표하면서 중부권 동서횡단철도를 장래 여건 변화 등에 따라 추진 검토가 필요한 사업으로 분류했다. 적어도 2030년까지는 이 노선을 추진할 계획이 없다는 말이다. 이에 지역 국회의원들이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를 위해 특별법 제정을 시도하고 있지만, 일개 철도 노선을 특별법으로 지으려는 시도는 당위성과 형평성이 별로 없을뿐더러 정부에서는 경제성 검증을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그런데 천안 노면전차 노선3(남부대로)과 노선4(원도심 - 독립기념관역)는 중부권 동서횡단철도로 계획된 구간을 비슷하게 달리도록 계획되어 있다. 두 계획을 적절히 조절하지 않는다면, 양쪽의 경제성 지수만 떨어지고, 결국 둘 다 짓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남부대로에는 세종 광역 BRT 천안 2단계 사업 계획도 있다. 추정 사업비 395억 원이 확정된다면 예비 타당성 조사도 따로 하지 않을 것이다. 세종과 천안을 연결하는 광역교통망이라는 점에서 노면전차보다 건설 당위성이나 효용이 더 앞서기도 한다.
도시 규모나 수도권 전철 1호선 같은 준수한 광역교통망이 갖춰져 있다는 점을 놓고 보면 노면전차는 천안에 알맞는 교통수단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노면전차 개통에 이르기까지는 합리적 재정 지출과 의견 수렴 절차, 우호적 여론과 체계적 계획 등 복잡한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고차방정식 같은 문제를 교통 당국이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노면전차는 탁상공론적 정책으로 시민이나 지역 언론에 비판만 받다 좌초될 수 있다. 노면전차가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면 설득과 조율, 창의적 발상이 상황마다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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