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의 수요 응답형 교통체계(DRT) 천안콜버스 중간 점검
야심 차게 추진했으나 시행착오와 불만이 넘쳐났던 천안시청의 2024년 시내버스 개편. 그렇지만 개편에서 얻은 성과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이용자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조용한 인기를 끈 천안콜버스를 직접 타보니 듣던 대로 편리했다. 하지만, 도입이 10개월째 되는 지금도 콜버스는 직산읍에서만 떠돌고 있어 다른 동네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도대체 천안콜버스는 언제 내가 사는 동네에서 탈 수 있을까?
짧지만 강렬했던 첫 경험
집 앞으로는 다니지를 않아 탈 수가 없었던 콜버스. 그런데 우연히 탈 기회가 생겼다.
군동리를 주제로 글을 작성하느라 현장을 가야 했고, 동네를 둘러본 뒤에는 흥타령 축제가 열리던 천안종합운동장으로 향해야 했다. 어떻게 이동할지 고민하던 찰나, 직산에 콜버스가 다닌다는 게 떠올랐고, 군동리에서 콜버스를 타고 직산역까지 간 뒤 직산역에서 아산역까지 전철을 타고 아산역에서 축제 셔틀버스를 타고 행사장을 가는 동선이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그려졌다.
궁금증을 풀 기회라는 생각에 싱글벙글했는데, 이게 웬걸? 콜버스는 군동리에서 약 2km 떨어진 충남테크노파크까지만 운행했다. 마침 운동장 바로 앞 천안시청을 가는 101번 버스가 군동리 앞에 와 있었는데, 나는 콜버스를 타야겠다는 일념 아래 그 버스를 타고서도 충남테크노파크에서 기어이 내려서 콜버스를 기다렸다.
앱으로 예약할 수 있지만, 앱 깔기가 귀찮았던지라 고객센터(1877-5728)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진행했다. 생각과 달리 예약은 순탄치 않았다. 첫 예약이어서 이름을 대야 한다는 소리에 다소 당황했고, 정류장마다 기존 버스정보시스템(BIS) 번호와는 별도로 콜버스를 호출하기 위한 정류장 번호가 배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나는 안내원을 제법 귀찮게 했다. 처음이라서 겪을 법한 혼란을 헤치고 어찌저찌해서 예약을 마치니 카카오톡에 탑승 관련 정보가 와 있었다.
콜버스는 예약 시간보다 3분 일찍 도착했다. 주말이라서 그랬는지 충남테크노파크에서 직산역까지 차 안에 사람은 버스 기사와 나 단둘이었다. 버스 기사랑 가까운 자리에 배정받아서 뻘쭘함을 느꼈던 것도 잠시. 일반 시내버스보다 안락한 좌석과 입석 승객 없는 쾌적함에서 편리함을 느꼈고, 원한다면 안전띠를 맬 수도 있었다. 중간 승객이 없었으므로 택시를 탄 것처럼 목적지에 한번에 그리고 (천안 버스 아니랄까 봐) 빠르게 이동했고, 버스는 찬송가를 흥얼거리며 약 5분 만에 직산역에 내려줬다.
제대로 음미할 새 없이 타본 콜버스는 내게 버스 그 이상이었다. 예약해야만 탈 수 있다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내가 이동해야 할 시간에 내가 있는 정류장 바로 앞으로 오고, 승차감이나 좌석 사양에 있어 일반 버스와는 비교가 불가하다. 더욱이 이렇게 편리한데도 엄연한 시내버스이기 때문에 요금은 시내버스 수준이고 무료 환승도 적용된다. 고급스러움과 편리함을 두루 갖추니 사람들이 많이 이용할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콜버스인지 DRT인지 뭐시깽이는 왜 생겼당가?
천안콜버스는 일종의 브랜드 같은 것이고, 업계에서 이런 것들을 공식적으로 부를 때는 ‘수요 응답형 교통체계(DRT)’라고 부른다. 정해진 노선 없이 대중교통 이용객의 이용 의사에 따라 시내버스 운행 경로가 결정된다는 점이 시내버스와 가장 큰 차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 벽지에 대중교통을 확충하려는 한 공무원의 노력에 힘입어 전북 완주와 정읍에서 처음 도입되었다.
기사 속 이야기는 천안도 예외가 아니다. 도심 외곽이나 농촌은 아직도 버스가 하루에 한 자릿수, 심지어는 아예 오지 않는 동네가 허다하다. 이를 해결해 보고자 마중버스와 농촌택시가 도입되었지만, 광덕면 일부 마중버스는 탑승객이 원체 적어서 폐선을 피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농촌택시만 배치하기에는 공급이 역부족이다. 교통 행정 실무진들은 DRT가 버스와 택시의 장점을 고루 갖고 있는 교통수단인 걸 주목해 시범적으로 직산읍 일대에 천안콜버스를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직산읍이었을까? 직산은 농촌이기도 하지만, 읍 안에 충남테크노파크와 2산단, 직산농공단지, 그리고 논밭 사이사이 등 공장이 많다. 통근 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음에도 버스 공급은 미미했다. 또한 수도권 전철이 지나는 직산역이라는 훌륭한 교통수단이 있지만, 출구 바로 앞에 내려주는 시내버스가 하루 두세 편에 불과할 정도로 연계 교통편은 매우 부실해서 직산역 이용객은 수도권 전철 1호선 모든 역을 통틀어 밑에서 1, 2위 수준이었다.
만성적 대중교통 공급 부족 지역이라는 문제점은 시범 사업지로는 최적의 조건이었고,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민 의견을 반영해 운영 권역을 초안보다 두 배로 늘렸고, 그에 따라 이용객도 늘었다. 버스 추가 투입을 검토한다는 이야기도 나왔고, 직산에서 호응이 좀 더 컸더라면 천안콜버스가 읍면 전역에 확대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차량 추가는 검토에 그치고 말았다. 택시 업계가 콜버스 도입을 강경하게 반대하자 시청에서 콜버스 확대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택시에 막혀 선두 주자에서 후발 주자로
택시 업계의 반발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택시와 버스의 장점을 두루 갖췄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이것이 택시인지 버스인지 헷갈리게 한다는 것이기도 해서 택시 업계에는 위기로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반발은 DRT를 처음 도입했을 때부터 있었는데, 만약 첫 도입 때 그 의견이 받아들여졌다면 DRT는 오늘날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천안은 그것이 받아들여진 셈인데, 확대가 지체된 사이 DRT는 전국에서 확대되고 있다. 충청지역에서는 세종과 청주가 콜버스 운영에 적극적이다. 천안콜버스와 같은 플랫폼을 활용하는 청주는 한 면을 제외한 모든 읍면에 DRT을 운영하고 있다. 대중교통 도시를 지향하는 세종은 읍면의 두루타버스뿐만 아니라 도심의 이응버스(옛 셔클)도 운영하고 있다.
중앙정부에서도 DRT 도입에 적극적이다. 국토교통부에서는 광역 교통 공급 확대를 목표로 서울과 위성도시를 이동할 수 있는 광역콜버스를 2024년 도입하는가 하면, 경찰청에서는 고령 운전자 문제 해결에 DRT가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했는지 지방자치단체, 현대자동차와 함께 DRT 확대를 위한 공동 협약을 체결했다.
이렇게 보니 천안콜버스 공급 확대 철회는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천안콜버스가 도입되고 두어 달 지나지 않았을 때, 천안과 비슷한 시기에 DRT를 도입한 지자체에서는 천안콜버스를 도입 예시로 소개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 세종이 셔클을 이응버스로 확대 개편했을 때 지역 언론에서 천안을 예로 들며 DRT 도입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낸 걸 들었을 때는 기분이 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대안이 없다
천안시청이 천안콜버스 추가 투입을 중단하겠다고 한지도 반년이 흘렀다. 그동안 태도 변화는 없었을까? 시청에 민원을 제기해서 나온 답변을 봤을 때는 짧은 시간 내에 흐름이 바뀔 것 같지는 않았다. 확대 운행은 택시 업계와 협의할지를 고려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운행 확대를 하려면 택시 업계와 합의가 먼저라는 것이니 확대 운행은 당장 추진해도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리고 천안콜버스나 일반 시내버스나 비용 면에서 별 차이가 없다는 대목에서는 현재 실무진들이 DRT 추가 투입에 회의적인 듯한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 시계는 돌아갈 수밖에 없다. DRT는 확대될 수밖에 없다. 기후 위기 극복과 교통 약자 이동권 증진을 위해 대중교통 공급을 늘리기는 해야겠는데, 시내버스 업계의 인력난은 심각하고, 안 그래도 운송 원가 이하로 시내버스가 굴러가는 판국에 무턱대고 시내 외곽 구석구석에 시내버스를 투입하기에는 채산성이 도저히 맞지를 않는다. 지방자치단체 수준을 넘어 중앙정부가 DRT 확대에 괜히 열을 올리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DRT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체계 운영이 더욱 원활해지고 있고, 수요에 맞춰 공급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어 운수회사 경영에도 도움이 된다. DRT에 주로 투입되는 현대 스타리아나 쏠라티는 1종 보통 운전면허 소지자들도 운행할 수 있어 일반 버스보다 인력 수급도 쉽다. 농촌도 농촌이지만, 이제 막 개발되어 대중교통망이 미비한 신도시에서는 교통 복지뿐만 아니라 장사 수단으로써도 효용이 있어 보였는지 수도권은 신규 택지를 중심으로 DRT가 발달해 있다.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미래 교통수단이라는 것이 쏟아져 나온다. 도입만 되면 교통 판도를 180도로 바꿀 것으로 기대되는 드론, 자율주행 자동차, 하이퍼루프 등은 실용화까지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 많다. 메가시티 담론이 확산하며 충청도를 포함한 각 지방에서도 건설 바람이 불고 있는 광역급행철도는 막대한 비용과 기나긴 공사 기간, 교통 거점 지역만 혜택을 볼 수 있다는 단점 또한 있다. 경전철의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는 트램은 아직 개통한 곳이 없다.
DRT는 앞서 말한 교통수단보다 최첨단 기술이 투입되거나 많은 돈이 들지 않아서 별것 아닌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사는 생활권 안에서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소소한 일상 속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변화를 천안에서는 직산에서만 느껴볼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아쉽다. 부디 혁명의 기운을 내 집 앞에서도 느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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