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불만이 흘러넘친 것도 모자라 전국 최악의 시내버스라는 오명이 언론이며 유튜브며 사방팔방 퍼지고 나서 천안시가 시내버스 개혁에 나선지도 몇 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으나 이따금씩 나오는 정책들을 보면서 적어도 의지는 있음을 느끼고 있다. 시민들이 애타게 바랐던 버스-전철 무료 환승제와 심야 노선 운행은 많은 호응을 받으며 정착했고, 책임 노선제 도입과 도심 급행 순환 버스 개통 등 운행 체계 효율을 높이려는 개편, 디지털주행기록장치 설치와 기사 친절도 교육 등 안전 운전을 위한 제도 도입도 이뤄졌다.
그동안은 세세한 것을 바꾸는데 집중했다면, 이제부터는 시내버스 구조와 체계를 180도 뒤바꾸는 개혁이 천안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반년 뒤면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시내버스 노선을 맞이할 것이고, 구룡동에 짓는다는 첫 공영 차고지는 2년 뒤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난폭운전과 불친절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사 격일 노동제(하루 16 ~ 17시간 노동을 한 뒤 다음 날을 쉬는 노동 형태)를 1일 2교대제로 바꾼다는 소리도 제법 나왔다.
여기에 지난 5월 31일에는 시내버스 (준)공영제 도입 공청회가 열렸다. 시청은 노선 소유권을 확보해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시내버스를 관리 감독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했고, 전문가와 시민들은 시청을 향해 다양한 목소리를 냈다. (불만 대비 반응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지만...)
25년간 시내버스를 몸소 타고다니며 시내버스 개혁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는 나는 그동안 (준)공영제에 대해 생각했던 것들을 꼭 이야기하고 싶어서 참석 신청을 했으나 여러 사정이 생겨 가지 못했다. 그래서 그때 하고 싶었던 말을 정리하는 김에 준공영제/공영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그것이 왜 도입되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글을 쓰며 짚어보고자 한다.
여기서 잠깐, 공영제의 반대는? 정답은 민영제! 천안은 이 민영제를 채택했다. 이런 체제에서는 운수 회사가 노선 운영과 서비스, 회사 경영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흑자가 나면 회사가 그 몫을 다 가져갈 것이고, 적자가 나서 망하는 것도 오롯이 회사가 감당할 몫이다.
하지만 천안 시내버스는 그렇게 굴러가지 않은지 오래다. 현재 시청은 여러 명목으로 운수 회사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학생/노인 버스비 할인, 휠체어 장애인 탑승이 가능한 저상 버스 구입비, 수소/전기버스 등 친환경 버스 구입비, 폭등한 천연가스 연료비 지원금, 무료 환승으로 인한 지원금, 벽지 노선 손실 보상금 등등.
정의대로라면 시청은 민간 회사 경영에 개입할 권한이나 의무가 전혀 없다. 그런데도 운수회사에 이런 저런 이유로 보조금을 주는 건 대중교통에 공공성을 빼고 도저히 달릴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시내버스는 교통 약자 이동권 보장, 교통 정체 감소, 탄소 배출 '0' 등 자가용이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사명을 둘러매고 굴러가고 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이유로 도시 당국이 천안 시내버스 3사에 제공하는 재정지원금은 2022년 한 해에만 441억 원. 액수도 액수지만, 2018년 246억 원에 비하면 4년 새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하지만 이렇게 돈을 쏟아붓는데 시내버스에 대한 불만은 여전하다.
왜 그럴까? 버스 이용객이 적어 장사 자체가 안 되는 문제도 있지만, 운수 3사의 무능과 도덕적 해이를 꼽지 않을 수 있다. 잊을만한 하면 보조금 횡령 뉴스가 나오기 때문이다.
세금은 세금대로 쓰면서 서비스 개선은 안 되고, 무능과 도덕적 해이로 회사 경영은 어려워지기만 한다.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을 벗어나려면 결국 답은 준공영제/공영제 밖에 없는 것이다.
준공영제와 공영제에서는 민영제보다 중앙/지방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이 많아지고, 노선 소유권을 공공이 가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 노선을 민간이 운영하면 준공영제, 공공이면 공영제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큰 차이가 생긴다.
준공영제는 2004년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이 시내버스 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면서 첫 선을 보였다. 서울 시내버스는 민영제의 폐해가 극심한 상황에 지하철 개통으로 인한 시내버스 수요 감소와 IMF 금융위기 등이 겹쳐 운수회사가 도산하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었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서울시는 고심 끝에 세금을 더 투입하는 대신에 버스 운행 감독 권한을 더욱 높이기로 한다.
하지만 운수 회사들은 노선 소유권을 뺐길 것을 우려해 반대했고, 이에 서울시청은 운수 회사에 노선 운영권을 인정하되 수입을 분배하는 수입금 관리형 준공영제를 도입했다. 전철-버스 무료 환승제 도입과 맞물려 서울형 준공영제는 대중교통 이용 만족도를 크게 높였고, 이후 여러 광역시에서 도입되었다.
시내버스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개선시켰다는 점에서 공이 분명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서울형 준공영제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운수회사에 일정 이상 수입을 보장한다는 점 때문에 각 운수회사는 경영 효율화에 덜 신경을 쓰게 되었고, 운수회사 임직원의 고액 연봉 논란과 횡령 사건이 나오면서 세금으로 민간 회사를 먹여 살린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지자체들은 관리 감독 강화나 수익 보장 범위 축소 등을 언급하고 노력도 하지만, 그게 그렇게 잘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노선 입찰형 준공영제는 이에 대한 반성으로 나왔다. 노선 소유권이 있는 버스 인가 관청이 특정 노선들을 경쟁 입찰을 통해 민간 운수 회사에 맡기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공공성을 중시하는 유럽에서는 이런 형태가 일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대 중반부터 국토교통부 광역급행버스(M버스)를 만들어내면서 처음으로 노선 입찰이 이뤄졌고, 2020년대에는 경기도 직행좌석버스를 공공버스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도입되었다.
최근에는 지방자치단체나 지방공기업이 노선 소유권과 운영권을 동시에 갖고 운영하는 공영제도 확산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민간 운수회사가 운행하기 어려운 벽지 노선이나 통학/통근 편의 향상을 위해 만들어진 시간 맞춤형 노선에 도입되었는데, 민간 회사와 경쟁한다기보다는 보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마중버스라는 이름으로 이를 처음 도입한 아산시는 천안은 물론 전국에서 참고하는 대중교통 이용 편의 증진 모범 사례가 되었다.
많은 인구가 모여 사는 도시에서는 시내버스를 체계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공영제 운영 규모가 좀 더 커지기도 한다. 대중교통 중심 도시를 내세우는 세종은 아예 세종도시교통공사를 설립해 농촌 노선뿐만 아니라 주요 간선 노선, 세종시 간선 대중교통망이자 땅 위의 지하철이라 불리는 간선급행버스(BRT)도 운영한다. 지하철공사를 교통공사로 전환한 인천은 특수 노선 운행에 이어 광역버스 운행도 준비하고 있다.
준공영제는 대중교통 강화를 위해서 도입되었고, 실제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준공영제, 특히 수입금 관리형에서 여러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천안 옆 도시 청주는 2021년 1월에 기초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준공영제를 도입했다. 도입된 지 2년이 지난 지금, 청주시청은 정기권을 도입해 통근/통학자들의 교통비 부담을 줄이는 한편, 지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노선 전면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준공영제가 없었더라면 이런 대대적인 변화는 어려웠을 테니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돌아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도시 안에서는 준공영제의 효용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시민사회에서는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여파로 손실보전금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아예 공영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고 늘고 있는 반면, 운수회사는 적정 이윤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준공영제 합의 파기를 주장하고 있다.
앞서 도입한 대도시들은 버스 업체를 집어 삼키는 사모펀드가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기업으로서 운수회사는 영세하고 사업상 적자를 보는 경우가 많아 매력적이지 않다. 하지만 수입금 관리형 준공영제하에서 운수 회사는 경영을 어떻게 하든 지자체로부터 적정이윤을 무조건 보장받는다는 점을 사모펀드들이 알아차렸고, 최근 들어 운수 회사를 투자 목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차파트너스은 서울, 인천, 대전 등 주요 도시의 운수 회사를 여러 곳 소유하고 있고, K1모빌리티는 경기도 대도시 곳곳에 있는 시내버스 회사들을 운영하고 있다.
사모펀드들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운영비를 절감함으로써 수익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시내버스 업계에 진출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들은 궁극적으로 수익 확보를 위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불안과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당장은 사모펀드가 승객 안전에 매우 연관 있는 분야에 투자에 소홀히 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노후 차량 대차나 차량 유지/보수, 적정한 차고지 확보 등 비용이 들 수밖에 없는 일들을 수익 창출이라는 이유 하에 축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들이 계속해서 운수 회사들을 인수한다면 시장 지배력은 커질 것이고, 이를 무기로 삼아 요금 인상이나 재정 투입 확대 등을 압박해 지자체나 시민들에게 부담을 더 많이 떠넘길 가능성도 있다.
(준)공영제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는 흐름으로 보인다. 시내버스 운영 체계 개편을 위해 시청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절반 이상이 준공영제가 이상적이라고 응답했고, 공영제도 1/3 가까이가 선호했다.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공영제로 전환을 바라고 있다.
현재까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시 당국은 수입금 관리형 준공영제를 가장 염두에 두는 것으로 보인다. 한 기사에 따르면 운수회사 3사와 준공영제 전환 협의가 진행 중인데, '적정 이윤 보장'에서 가장 큰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형태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시내버스가 빠른 시일 내에 제 구실을 하는 것이 우선이니까.
이왕 내 생각을 얘기한 김에 한 마디를 보태보자면, 시에서 준공영제로 전환하고 나서 당분간은 효율성보다는 시내버스 접근성을 최대한 높이는 정책을 펼쳤으면 좋겠다. 현재 천안은 원도심인 천안역 근방마저 퇴근길에는 막힐 정도로 교통 정체가 심각하고, 터미널 방향 노선은 지나치게 많은 데 비해 동서를 잇는 노선은 매우 빈약하다.
대중교통망이 매우 빈약한 상황에서 자가용 이용자들을 시내버스로 끌어들이려면 노선 공급을 최대한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지난 2월에 시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시민들이 꼽은 시내버스 불편사항 중 1, 2위가 빈약한 노선과 너무 긴 배차간격인 점을 고려하면 당분간 많은 투자와 지출이 필요하다. 노선은 중복 구간을 다듬는 수준으로 줄이고, 버스 증차는 적극적으로 시행해 신규 노선 투입과 배차 간격 축소에 활용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누구나 다 알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에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을 당부하며 마치려 한다. 천안시가 준공영제를 도입하든 공영제를 하든 현재보다 시내버스에 투입되는 시 예산과 시청 공무원들의 노력은 더욱 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돈은 돈대로 쓰면서 전국 최악 시내버스, 시내 교통이 불편한 교통 도시, 시청 가는 것보다 서울 가는 게 더 빠른 도시라는 오명은 벗기 힘들 것이다.
※ 참고자료
충북일보 <갈길 바쁜 준공영제, 멀리보고 가야> ( https://www.inews365.com/news/article.html?no=764667 )
서울신문 <버스회사 삼키는 사모펀드… “독과점 폐해 우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81/0003361696?sid=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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