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역 임시역사 개관 19주년 ②] 오늘날 천안역과 원도심의 현주소, 그리고 문제가 많은 임시역사 |
사람들은 천안역이 몰락했다고 쉽게 말한다. 천안역 일대 스카이라인이나 야경을 천안 대표 번화가인 천안터미널, 신불당과 비교하면 더더욱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인상과 달리 천안역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천안의 관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기 전이었던 2019년 천안역 하루 평균 이용객은 일반철도와 수도권 전철을 더해 30,000명이 넘었다. 수도권 전철이 2008년에 신창역으로 연장되기 전까지는 천안-아산에 있는 수도권 전철 역 중 유일하게 2만 명을 넘겼고, 2021년에도 천안-아산 수도권 전철 역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이용했다.
특히 천안역에 고속열차가 정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전국의 모든 역을 일반철도 이용객 수로 줄 세웠을 때 천안역은 2021년 기준 16위인데, 이는 고속열차가 서지 않는 역 중에서 가장 많다. 천안아산역은 수서발 고속철 SRT가 개통한 2017년 전까지 천안역을 일반철도 이용객 수에서 완벽하게 앞서지 못했다.
천안역이 교통 거점으로서 영향력이 남아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고속열차만 안 설 뿐이지 서울에서 출발했거나 서울로 갈 모든 경부/호남/전라/장항/충북선 열차가 정차한다. 2022년 기준 하루에 열차가 66회 정차하고, 배차 간격은 최소 5분에서 30분을 유지하고 있다.
지리적 우위도 사람들을 천안역으로 끌어모으는 역할을 한다. 천안아산역은 역사 면적 대부분이 아산시 관할일 정도로 서쪽 시 경계에 치우쳐져 있다. 반면 천안역은 도심 중심부에 있고, 천안터미널과 가깝다. 특히 천안역은 대중교통 접근성에서 천안아산역을 크게 앞선다. 천안아산역으로 가는 천안 시내버스는 10개가 채 안 되지만, 천안역으로 가는 시내버스는 전체 운행 노선의 절반 가까이 된다. 또한 아산역을 정차하는 신창행 전철은 평균 30분에 1번씩 운행하는 데 비해, 천안역은 신창행과 천안행 전철이 모두 정차하기 때문에 전철이 시간당 3~6회 운행한다.
이렇게 천안역은 교통 거점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어서 지역 주민은 물론 외지인들도 많이 이용한다. 천안을 처음 찾는 사람들에게 천안역은 단순한 교통 관문일 뿐만 아니라, 천안이라는 도시의 첫인상이 생기는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임시역사가 오래 유지되면서 천안역 원도심뿐만 아니라 도시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심어주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더욱이 역 주변에는 상권 몰락으로 인해 낡거나 빈 상가가 많다. 둘은 시너지를 이뤄 천안의 이미지를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도시가 아닌, 낡고 허름한 도시로 인식하게 한다. 임시역사 개관 이후 내내 외지 출신 사람들은 이 문제를 한결같이 지적해왔건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겉모습만 문제인 게 아니다. 내부 구조도 많은 것이 불편하다. 비좁은 실내는 여기서 언급하지 않아도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구조적 문제도 많다. 경부/호남/전라선 열차가 정차하는 동부역과 장항선 일반열차/전철이 정차하는 서부역이 분리되어 있어서 천안역을 처음 찾는 사람들은 헤매기 쉽다. 동선도 중요하게 생각할 부분이 많다. 현 역사는 민자역사가 지어질 예정이었던 부지를 피하려고 동부광장 남쪽에 치우쳐서 지었다. 위성 지도는 광장 - 맞이방 - 승강장으로 이어지는 동선이 직선적이지 않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동부역과 서부역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불편한지를 굳이 가리자면 서부역이다. 맞이방은 동부역이 더 넓고, 광장과 각종 역무 시설 등 역 주요 시설이 몰려있는 곳이 동부역이다. 그에 비해 서부역은 면적이 좁으면서 전체 이용객 수로 따졌을 때는 동부역보다 더 많은 이용객을 감당해야 한다.
승강장 연결통로가 남쪽 한 곳으로 몰려 있어서 반대편 열차 칸에서 타고 내리는 이용객은 상당한 거리를 이용해야한다. 개찰구와 이동 통로는 일반열차와 수도권 전철 이용객 간 동선이 분리돼지 않아 이용자가 열차를 잘못 탈 위험이 있거니와 부정승차 소지가 많다. 뭐니뭐니해도 심각한 문제는 안전. 수도권 전철 승강장에는 안전문이 하나도 없다. 예산 절감을 이유로 역을 새로 지을 때 한꺼번에 지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역사 신축이 여러 차례 엎어지면서 남은 후유증이다.
그나마 서부역 출구에는 동부역에는 없는 에스컬레이터가 있고, 시내버스를 출구 앞에서 바로 탈 수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하는 건지...
동부광장을 교통광장으로 만든 것 외에는 별 변화가 없었던 천안역과 달리 원도심 일대는 최근 몇 년간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걸 부추긴 건 도시재생 담론 활성화와 도시 당국의 원도심 개발 정책 변화, 그리고 부동산 경기 부활(혹은 과열)이었다.
2000년대만 해도 시청은 대규모 민간 자본 유치를 통한 상업 시설 확충으로 원도심을 개발하려고 했다. 하지만 개발에 참여하는 민간 자본이 없어서 계획은 실패했고, 불황은 깊어져 갔다. 2010년대부터 시청은 본격적으로 천안역에 체계적인 도시 계획을 구상했고, 개발 주체로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대표적인 것이 옛 천안시청사 복합개발 사업이다. 행정 · 경영 기능 강화와 주거 인구 증가에 초점을 두고 개발했고, 시청과 한국토지주택공사, 현대건설이 협업했다. 그래서 동남구청 신청사와 대학 행복기숙사, 어린이회관, 지식산업센터, 전망대를 포함한 주상복합아파트 등이 들어서게 됐다. 완공 이후 원도심 중심 시설이 된 것은 물론이고 국내에서 도시재생 선도 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었는지는 몰라도 천안역 주변은 주상복합아파트 건설을 중심으로 한 민간 주도 개발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동남구청사 개발 사업이 마무리될 때쯤 서부광장 근처에도 고층 주상복합이 들어서더니, 이제는 그 주변으로 계획되거나 공사가 진행 중인 단지만 5곳이 넘는다.
그리고 이제는 주차장과 공터로 허비되고 있는 천안역 광장 또한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천안역 광장 또한 중앙과 지방정부 주도 도시재생 사업으로 추진되고, 청년을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시설을 개발할 예정이다.
도시재생 어울림 센터라는 이름으로 창업 보육 시설과 행복주택이 완공되었고, 앞으로 천안역세권 국가시범 혁신지구 계획에 따라 첨단산업 중심 지식산업센터와 캠퍼스 타운, 공공주택, 주차타워 중심 환승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계획대로 된다면 서부광장은 청년과 창업, 대학이 연계되는 산업 중심지가 되는 것이다.
동부광장은 비우고 넓히는 일에 집중한다. 주변 상가를 철거한 자리에 주차장 부지를 더해 광장을 만들 계획이다. 비용은 공공주도 천안역전시장 재개발 사업 이익을 활용해 만들 것으로 계획했다. 그리고 동부와 서부광장 천안역을 연결하는 보행로를 만들어 철도로 인한 도시 단절을 해소할 것으로 보인다. 휴식 공간이 훨씬 넓어지는 것이다. 그래 이제 새 역사만 지어지면 되는데...
※ 이 글에서 인용된 각종 이용객 수 통계는 한국철도공사 '철도통계연보'와 '광역철도 수송통계자료'를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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