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공간에도 볕 들 날 있다] ① 독립기념관 조선총독부 철거부재 전시공원
개관 당시에는 동양 최대 규모였던 건물,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국군 서울 탈환이라는 역사의 한 장면을 함께 했던 건물. 식민 통치, 해방, 분단, 전쟁, 항쟁 등 온갖 사건으로 굴곡진 근대사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자리를 지켰던 건물. 그래서 굳건히 그 자리를 버틸 줄만 알았던 조선총독부 청사. 하지만 지금 건물은 그 자리에 없고, 독립기념관에 잔해만 남았을 뿐이다.
일제에는 전리품이요 조선 사람에게는 치욕이었던 것이 바로 조선총독부 청사다. 조선총독부는 청사를 지으면서 엘리베이터와 철근 콘크리트 공법 등 당시로서는 최신 건설 기술을 적용했고, 우뚝 솟은 첨탑과 청동 돔, 호화로운 장식품들로 안팎을 꾸며 자기들의 힘을 과시했다. 거기에 더해 의도적으로 조선 왕조의 법궁이었던 경복궁 내 일부 건물을 헐고 지어 일본 제국주의의 우월함을 선전하면서 조선인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했다.
모순되게도, 이 건물은 일본인보다 한국인 손을 더 오래 탔다. 남한에 이만한 건물이 없던 탓에 한국인들은 중앙청(정부중앙청사)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40여 년간 참고 썼다. 그러나 산업화로 국격은 날로 성장했고, 민주화의 물결은 권위주의 청산을 요구하고 있었다. 뼈아픈 역사도 보존해야 한다는 존치론도 있었지만, 국민 기대 속에 민주화 이후 첫 직선 대통령이 된 김영삼은 역사 바로 세우기 정책 중 하나로 철거를 결정했다.

1995년 8월 15일, 첨탑 제거를 시작으로 철거가 1년 동안 진행되었는데, 그동안 철거된 여러 재료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있었다. 독립기념관에 원형을 복원해 항일 투쟁 운동을 전시하는 공간을 짓는 안이 유력한 계획이었으나, 많은 돈이 들고 굳이 복원해서 일본 사람들 기를 살려줄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대신 자재들을 활용해 공원을 만들겠다는 청사진이 제시됐고, 1998년 8월 8일에 지금 공원이 모습을 보였다.
‘조선총독부 철거부재 전시공원’은 하나부터 열까지 많은 의미를 두며 지어졌다. 일단 위치부터가 그렇다. 공원은 독립기념관을 상징하는 건물인 겨레의 집 기준으로 서쪽, 즉 해가 지는 위치에 있다. 이는 일본 제국주의 몰락과 식민 통치 종말을 상징하는 동시에 일제 통치 잔재를 완전히 청산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다.

공원이라고 해서 뭔가 아름다운 것을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할 수 있다. 이 공원을 감도는 분위기는 으스스함과 칙칙함이다. 이렇다 할 꽃밭이나 잔디가 없다. 독립기념관이 봄에는 꽃들이 가을에는 단풍나무들이 터널 길을 이루고, 드넓은 잔디밭이 있어 아이들이 맘껏 뛰놀 수 있기로 이름난 것과 비교하면 더욱 대비된다. 그래서 공원에서 일제와 조선총독부 청사의 화려했던 과거를 느낄 수 없다.
건물 뼈대를 이뤘던 석재들은 특정한 형체를 갖추지 않은 채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분명 어떤 것은 조선총독부를 떠받치던 기둥이었고, 또 다른 것은 조선인의 저항을 막아낸 외벽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석재들은 깨진 자국이 방치되어 있거나 이끼가 짙게 껴있다. 사람의 손이 별로 안 가는 듯한 모습은 방치된 빈집이나 폐허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공원 한가운데는 마치 뾰족한 탑을 중심으로 한 작은 원형극장 같은 모습이다. 무대 주인공이 된 이 탑은 조선총독부 청사의 꼭대기를 장식했던, 빛나는 유리와 함께 건물 위에 우뚝 솟은 닿을 수 없는 존재였던 첨탑.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렇게 앙상한 뼈대와 속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첨탑 사이 사이에 있었던 유리는 공원이 개장하자마자 식민 통치당했던 경험에 울분이 찬 사람들이 돌을 던지며 손수 깨뜨려서 없어졌다고 전해진다. 거기에 첨탑은 지면보다 5m 아래에 있다. 덕분에 이제 우리는 기고만장했던 일제의 자존심을 더 이상 올려다보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첨탑을 내려다보며 비인도적이고 강압적인 통치가 부질없음을 느끼면 되는 것이다.

수많은 논쟁과 토론 끝에 세워진 독립기념관 조선총독부 철거부재 전시공원. 그러나 치열했던 논의 과정에 비하면 찾는 이가 별로 없어 보여서 안타깝다. 전시관 구역에서 다소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거리를 경사진 길로 걷는 게 쉽지 않은 것도 있고, 볼거리가 별로 없으면서 밝은 분위기가 아닌 탓일까?
그럼에도, 이 공간은 여전히 우리에게 의미 있는 교육의 장이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독립 정신을 되새기고, 쓰임이 다한 돌무더기에서 해방이 주는 짜릿함이나 압제 권력의 무상함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주변에는 숲길과 무궁화 테마공원도 있어 산책하기 좋다. 독립기념관의 또 다른 모습을 보고 싶다면 조선총독부 철거부재 전시공원에 꼭 한 번 들리시길!
※ 이 글은 필자가 기고한 ≪2024 천안문화독립도시 아카이빙≫을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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