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산류천석의 얼, 이곳에서 키우다

천안삼거리

by 드파랑 2026. 1. 11. 16:00

본문

[잊힌 공간에도 볕 들 날 있다] ② 석오이동녕기념관 · 생가지

산에서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는다. ‘산류천석(山溜穿石)’은 작은 것이라도 모이고 쌓이면 큰 것이 됨을 비유한 고사성어다. 일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석오 이동녕 선생은 이 말을 즐겨 썼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은 갈 수 없는 길을 묵묵히 걸었던 그의 삶과 어울리기도 한다. 그 얼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 생가와 기념관이다.

 

목천 동리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이동녕은 만주로 망명한 뒤 독립군 양성 기관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3 · 1운동 이후 여러 독립운동 단체가 힘을 모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태동케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임시정부 설립 이후에는 주석과 임시의정원 의장 등을 맡으며 갖은 풍파 속에서도 자리를 지킨 임시정부의 대들보였다. 천안시는 그를 기리고자 2005년에 생가를 복원하고, 2010년에 기념관을 조성했다.

 

기념관과 생가를 품은 마을은 산줄기가 감싸고, 들판 사이로 산방천 물줄기가 가로지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형세를 띄고 있다. 왜가리를 자주 볼 수 있을 만큼 풍요롭고 깨끗한 기운이 큰 사람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이동녕기념관 정면. 건물 구조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상하이 청사를 본 땄다.

기념관은 임시정부가 막 상하이에 자리 잡았던 때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관람객을 맞이하는 커다란 태극기와 흉상을 지나면 선생의 삶을 알 수 있는 영상과 선생의 일대기를 연표로 정리해 놓은 공간을 볼 수 있다. 이것을 보면서 이동녕이라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의 모습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기념관에 한 가운데에 자리 잡은 원형 공간에는 임시정부 요인으로서 활동한 모습을 재현한 미니어처와 그림이 있고, 활약상을 기록한 것이 공간을 둘러싸고 있다.

 

01
기념관 내부 전시물들. 입구에 들어서면 이동녕의 일대기를 연표로 정리한 전시물(첫번째)을 볼 수 있고, 전시관 한가운데에는 임시정부 활동을 재현한 미니어처(두번째)가 있다.

맞은 편에는 각종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임시정부에서 쓰던 태극기, 기록물이나 의연금 영수증 등이 있어 임시정부가 어떻게 활동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대의, 광명, 산류천석 등의 글귀를 담은 친필 휘호에서는 강직하고 꼿꼿한 성품이 드러난다. 나라 사랑을 주제로 한 영상 옆에는 당시 의복을 입고 찍을 수 있는 기념사진관이 마련되어 있다. 특히 독립군복과 모자가 인상적이다.

 

생가 앞에는 선생의 모습을 본 딴 좌상이 함께 놓여 있다.

기념관을 빠져나오면 생가가 보인다. 뒤편은 산이 주변은 돌담으로 에워싸인 생가는 디귿자 안채에 일자형 대문간채가 있어 전체적으로는 미음자 형상을 하고 있다. 누추하지도 호화롭지도 않은 평범한 모습이다. 안채 방에는 당시 생활상을 재현한 미니어처가 있는데, 엄격한 교육 속에서 자랐을 선생의 모습이 상상이 된다. 생가 밖 마당에는 우물과 좌상이 있다. 좌상과 함께 앉아 사진을 찍으면 생가의 온전한 모습을 담을 수 있다.

 

<석오낙락> 공연 모습. 장구 연주와 더불어 다양한 볼거리가 준비되어 있다.

기념관을 방문하던 중 우연찮게 특별한 공연도 볼 수 있었다. 방문 당일 목요일 오전 11시 20분에 석오와 함께 노닐 다는 뜻의 <석오낙락>이 열렸다. 천안시립흥타령풍물단이 이끄는 이 공연은 진도씻김굿에 화려한 장구 연주를 어우른 씻김설장고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소박한 공간에 클래식과 달리 객석과 무대의 구분이 없는 국악 고유의 특성 때문인지 소리의 울림, 미세한 움직임들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다. 막판에는 단원들이 관객과 함께 공연을 즐기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위인의 생가가 모습을 재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공연과 더불어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고, 그 의미를 인정 받아 해마다 공연을 이어나가는 듯했다.

 

독립을 위해 본인의 모든 것을 바치다 끝내 광복을 보지 못한 석오.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삶과 업적이 잘 주목받지 못하는 듯해 아쉽지만, 그나마 이 기념관과 생가에서 선생의 얼을 느끼고 발자취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석오이동녕기념관과 생가는 자가용과 천안시티투어를 활용하면 바로 앞까지 올 수 있다. 시내버스로는 392번을 타고 동리교 정류장에서 내려 조금 걸으면 되지만, 하루에 다섯 번밖에 안 다닌다. 시간이 맞지 않을 때는 독립기념관 가는 시내버스 타고 목천읍행정복지센터에서 내려 1km 정도 걸어야 한다. 기념관 · 생가와 독립기념관 사이 거리는 약 3km로, 선선한 날에는 독립기념관을 둘러보다가 산책 삼아 걸어가도 좋다.

 

선생이 쓴 산류천석 글씨를 본 따 만든 표지석.

 

※ 이 글은 필자가 기고한 ≪2024 천안문화독립도시 아카이빙≫을 재구성했습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