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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미래가 있는데 활기찬 오늘이 없는 정당

여의도

by 드파랑 2025. 6. 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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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대선 쪽글]

민주노동당이 1%도 못되는 득표율을 못 받은 이유를 대자면 끝도 없이 댈 수 있다. 양당제라서, 원외정당이라서, 후보 인지도가 낮아서, 돈이 없어서, 내란 종식 프레임이 작동한 선거라서, 정책 대신 네거티브가 난무한 선거라서, 민주노총 차원에서 지지하지 않아서...

 

이것만으로는 모자란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잠을 설치다가 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투표 시간 끝나고 난 뒤 몇 시간 동안에 들어온 후원금이 무려 13억 원이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이 모였다는 것도 놀랍지만, 기사에 댓글이 600개 넘게 달린 것도 놀라웠다.

 

(리박스쿨이 사라져서인지) 댓글에는 날 선 분위기 대신 낙선을 안타까워하는 분위기가 가득했다. 어쩔 수 없이 이재명에게 투표해서 미안했다는 댓글, 다음 선거에서 권영국과 민주노동당을 보고 싶다는 댓글이 참 많았다. 기사에서도 투표하지 못한 아쉬움에 돈이라도 보내고 싶었다는 사람들의 반응을 전했다.

 

단비 같은 소식인데, 기쁨보다 씁쓸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미래의 민주노동당은 좋아하지만, 오늘날의 민주노동당에는 매력을 못 느낀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소금 같은 정당

권영국 후보가 받은 344,150표와 득표율 0.98%는 2000년 이후 대선에 출마한 제1 진보정당 후보가 받은 가장 저조한 성적이다. 권영길 후보가 민주노총이 본격적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주장하며 만든 국민승리21 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했을 때로 되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달러를 꾸려고 IMF와 한참 협상하던 1997년 12월 어느 날, 그는 306,026표에 득표율 1.2%를 받았다.

 

지역 차원에서 보면 표를 몰아주던 곳에서 몰표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 뼈아팠다. 최소 득표율을 기록한 전남(0.72%, 9,352표)과 최대 득표율을 기록한 제주(1.48%, 6,191표)의 득표율 차이는 고작 두 배. 두 지역은 지난 총선에서도 같은 위치였는데, 두 지역의 득표율 차이는 3배가 넘었다. 이재명의 민주당이 있는 이상 호남 사람들에게 진보정당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은 확실해졌고, 녹색당의 유일한 정치적 거점인 제주도에서도 ‘찬탄’과 ‘반탄’이라는 구도는 피할 수 없었다.

 

기초 행정구역 단위에서 살펴봤을 때, 전통적 지지 지역인 서울 도심 · 서북부, 경남 창원 성산, 울산 동 · 북, 제주 제주 등에서 후보는 1.5% 정도 지지를 받는 데 그쳤다. 지난 총선에서 녹색정의당이 창원 성산, 경기 고양 덕양, 서울 마포에서 5%가 넘는 득표율을 올리고, 고양 덕양, 서울 마포 · 서대문에서 만 표 넘게 받은 것과 비교하면 초라하다. 

 

이 지역들은 노동, 기후, 소수자 인권, 여성, 지역 자치 등에 대한 요구가 강해서 진보정당에 많은 표를 던졌던 지역이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그 지역조차 내란 청산에 초점을 두고 투표하는 상황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의 존재감은 어디에나 고르게 있지만 미미하게 있는 소금 같았다.

민주노동당의 이번 선거 결과를 지역 별로 정리했다. 위는 광역 행정구역 단위, 아래는 기초 행정구역 단위. 압도적 지지를 받은 곳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래 그림은 득표율 기준 상위 25개 선거구를 줄지은 것이며, 지난 2024 총선 결과(왼쪽)와 비교해서 볼 수 있다. 울산 동구과 북구가 새로 들어오고, 서울 산하 자치구가 목록에 많이 포함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진심을 담은 걸음, 닿지 못한 진심

선거 기간 동안 유세 동선은 마치 진보정당의 본질을 되찾는 여정처럼 보였다. 후보는 유세 동선에서 그걸 보여줬지만, 그것이 효과적으로 유권자에게 와닿지는 않은 것 같다.

 

정의당이 사분오열되기 전, 정의당은 정체성에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지지자 사이에서는 정의당이 중앙 정치에 집중한 나머지 현장에 없다는 지적이 항상 나오곤 했고, 바깥에서는 정의당이 여성 의제에 집중하느라 노동에 소홀하다는 지적 아닌 지적이 나왔다. 끝내 사분오열로 끝난 혼란이 가라앉고 나서 정의당은 좀 더 왼쪽으로 가는 한편, 다른 진보정당과 연대를 강화했다. 이번 대선은 유권자에게 그 노선을 처음으로 제대로 선보이는 자리였다.

 

선거 기간 첫 일정으로 세종호텔과 한화오션 고공 농성장을 방문한 것은 으레 해왔던 대로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후에도 후보는 노동 현장과 기후 문제 현장 위주로 돌아다녔다. 민주노동당이 중점적으로 제기하는 의제 노동, 환경, 여성과 관련된 현장에서 밑바닥을 다지며 사람들에게 민주노동당의 진심을 전달하려고 했다는 점이 두드러졌다.

 

천안 사람으로서는 특히 후보가 천안에 들르지 않았다는 것에서 그런 의지가 느껴졌다. 천안은 충남에서 제일 큰 도시이면서 평균 연령이 낮기로 전국에서 손꼽히는 도시라서 전략상으로는 안 들를 수 없는 곳이고, 어떤 후보는 두 번이나 방문했다.

 

권영국 후보는 태안에서 발전소 비정규직 직접 고용, 에너지 전환, 기후 정의를 호소했다. 태안은 김용균씨에 김충현씨 목숨도 앗아간 석탄화력발전소와 서부발전 본사가 있는 곳. 태안은 천안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사는 부성2동(6만 3,504명)보다도 적은 사람이 사는 농촌임에도, 비정규직 문제와 기후 정의를 알리기 위해서라면 그곳이 더욱 적절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태안 사람들에게는 걸음이 그다지 와닿지 않은 듯했다. 권영국 후보가 태안에서 받은 표는 310표. 득표율 0.73%는 웬만한 충청도 농촌 지역 평균 수치였다. 오히려, 태안과 생활권이 같고 후보도 잠깐 들른 서산에서는 천 표를 넘게 받았고, 후보가 들르지 않은 천안은 1%를 넘겼다. 기후 위기 최전선에 있다는 곳에서도 표는 오늘날의 선거 구도에 좌우됐다.

5월 31일, 태안터미널 앞에서 '정의로운전환 2025공동행동 대행진'이 열린 모습. 이 행사에는 민주노동당, 시민사회단체, 민주노총 등이 참여했다. (출처=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의 충남 지역 선거 결과를 정리했다. 산업단지가 많이 분포한 북부권의 득표율이 높고, 남부권은 그 반대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대남을 위한 변명

이번 선거에서 가장 많이 우려하는 것이 20대, 30대의 극우화다. 20대 남성이 이준석을 가장 많이 지지한 반면, 20대 여성은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면서 이대남을 더더욱 못난이처럼 보이게 했다. 아직 20대인 친구나 이제 정년을 바라보는 친척 분은 이런 현상에 불만을 토로했고, 커뮤니티에서는 이대남 개새끼론이 등장했다.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 온 20대가 더 이상 진보적이지 않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이것은 전세계적인 흐름이다. 미국, 프랑스, 독일 등 극우 정치인이나 정당의 주요 지지층은 청년이다.

 

하지만, 출구조사를 보면 극우화 이 한마디로 투표 경향을 정리할 수는 없다. 1년 전 출구조사만 해도 개혁신당의 20대 남성 예측 득표율은 16.7%로, 개혁신당은 국민의미래와 더불어민주연합을 지나 조국혁신당보다도 낮은 4위로 표를 받을 것으로 예측됐다. 이대남이 1년 전보다 20% 더 극우화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그들의 투표 행태를 온전하게 설명한 것일까?

 

최근 5년 간 선거 중 다자 대결 구도가 형성된 총선과 대선의 출구조사 추이. (단위: %)

 

우려를 잠시 접어둔 채 출구조사 추이를 다시 보자. 지난 5년 간 다자구도로 치른 선거에서 양당, 특히 보수당계 정당은 20대 남성에게 평균 득표율을 밑도는 지지를 받았다. 20대 여성은 일관되게 민주당과 정의당에 많은 표를 주면서도, 제3지대 혹은 중도 정당 위치를 잡은 정당에 평균 득표율 이상의 지지를 보냈고, 이번 대선에서는 그 논란 속에서도 이준석에게 10% 넘는 지지를 보냈다.

 

20대에게 젠더 문제는 민감한 문제기는 하다. 하지만, 오로지 그 관점으로 그들의 투표 행태를 단정하는 것은 현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다. 이대남이 보수적이긴 해도 보수 정당에 대한 지지는 생각만큼 강하지 않고, 차마 민주당도 보수정당도 지지할 수 없는 이대녀에게는 중도와 제3지대를 표방하는 정당이 매력적인 선택지로 느낄 수 있다고 봐야 한다.

 

그에 대한 단서는 개혁신당에 투표한 20대 남성 네 명을 인터뷰한 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 중에서 민주노동당에 반감을 표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지지하거나 예전에 진보정당에 투표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민주노동당이 연금이나 청년 문제에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지 않았거나, 세력이 너무 작은 정당이었기 때문에 이준석을 뽑았다고 했다. 그들 딴에는 기존 정치를 거부하면서도 현실에 맞춘 전략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새로운 정치 세력에 대한 갈망은 항상 있었다. 기존 정당들이 유권자들에게 새로움을 잘 채워줬다면, 지난 글에서 언급한 제3지대가 떴다 지는 일을 없을 테다. 21대 총선에서 정의당이 10%에 육박한 득표율을 얻은 이유 중에 정치 혐오층이나 무관심층의 투표가 있었던 분석도 있었다.

 

20대의 민주노동당 지지율은 지난 총선에 비해서 별 차이가 없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 사회의 진보를 요구하는 청년은 여전히 있다. 문제는 진보정당이 놓치고 있는 청년들. 청년들은 청년에게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 줄 후보가 필요했는데, 내가 생각해도 민주노동당은 이런 문제에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노녹정 연대 정치를 끌어내고,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확립하며, 사람들에게 진보정치의 필요성을 느끼게 함으로써, 진보정당를 선택지로 두는 민주당 지지자가 있음을 확인한 점은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과 권영국 후보과 노력한 끝에 얻은 값진 성과다. 하룻밤 사이에 13억원이 모였다는 소식은 분명 놀라웠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기업이 아니라서 생존하려면 돈보다도 표가 모여야 한다. 이 값진 성과와 열렬한 반응이 결과 앞에서는 힘을 잃고 있다.

 

이제 눈길은 대선을 치르고 나서 거의 1년 되어갈 때 쯤에 치르는 지방선거를 향할 수밖에 없다. 이재명 정부가 윤석열 정부급 실정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 2026년 선거는 허니문 선거가 될 것이다. 소신투표가 많아지리라는 기대도 있지만, 예전과 달리 진보정당은 여러 곳이 된 데다가 민주노동당 당세와 살림이 나아질지 의문이다.

 

불안과 불리함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노녹정 연대에 진보당도 함께 한다면 조직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지방선거인 만큼 민주노동당이 줄기차게 주장한 의제들을 현실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지역 혹은 현실 밀착형 미세 공약을 만들어야 한다. 청년들이 관심 있는 사안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유권자들이 사표의 딜레마에 빠지지 않도록 전략 지역에서는 민주당과 지역구 단일화를 꾸준히 시도해봐야 한다.

 

어떤 거라도 좋으니, 유권자들의 현실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정책, 유연한 선거 전략을 갖췄으면 좋겠다. 이제 민주노동당은 지방선거에서 유권자에게 밝은 미래와 함께 활기찬 현재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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