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대선 쪽글]
최악, 진흙탕, 흑색선전, 노잼... 사람들이 입 모아 3차 토론을 비판했지만, 나는 이번 토론회가 인간 이준석의 진솔한 모습을 전 국민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어떤 토론보다도 값졌다고 평하고 싶다.
평범한 사람들은 잘 알지 못했던 사실을 발굴해내고 창조하는 창의력과 상상력, 성적인 것을 지상파 방송에서 서슴없이 꺼내는 자유분방함과 패기, 토론회에서 처음 만났고 그 일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 물을 수 있는 싹싹함과 집요함을 두루 갖춘 정치인은 오직 이준석 하나임을 우리는 똑똑히 봤다.
대선 주자 중 가장 비호감도가 높았던 이준석, 하지만 1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그를 기대감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양당이 지배하는 정치 질서를 제3지대 정당으로써 개혁신당이 깨뜨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이준석뿐만 아니라 금태섭, 류호정으로 대표되는 세 번째 권력, 양향자에 천아용인까지. 성향도 가치관도 진영도 다른 사람이 모여 새로운 정치를 펼치겠다고 했다. 개혁신당을 지지하지 않고 개혁신당이 오래갈 수 있을지 의문스럽게 지켜보는 나조차도 어쨌든 응원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와서 보면 그런 기대는 헛된 기대이자 오판이었다. 당을 함께 만들었던 동지들은 하나둘씩 등을 돌리면서 천아용인은 천아용인이 되었으며, 당은 이준석 1인 정당으로 탈바꿈했다. 통합과 혁신은 온데간데없는 상태에서 이번 선거에서 보여준 참담한 모습은 그 한마디만이 아니었다.
미래를 준비한다면서 10대 공약에 기후 문제 해결책은 하나도 없는 모습, 자기 입맛에 맞게 준비한 자료로 논지 펼치다가 현실 사례와 법조문 몇 마디로 반박당하자 얼굴이 불그죽죽해지면서 달려드는 모습, 일개 커뮤니티에서 올라온 것 그대로 발언하고 행동하는 모습, 복지 공약을 색깔론과 퍼주기로 치부하고 비난하는 모습, 국민의힘이 공천한 대통령 후보가 탄핵 당해서 선거임에도 국민의힘과 민주당을 양비론적 관점에서 동일 선상에 놓고 비판하는 모습.
후보가 내건 구호 ‘압도적 새로움’은 무색했다. 이준석만큼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을 보여준 후보는 없었고, 누구보다도 특정 커뮤니티에 기댄 팬덤 정치를 했으며, 소수자와 약자를 향한 혐오는 여전했다. 후보는 이렇다 할 참신한 정책을 보여주지 못한 채 유권자에게 ‘압도적 거부감’을 안겼다.
개혁적이지도, 민생을 위하지도 않은 정당에 사람들은 그걸 알아차렸는지 10%도 못 미치는 적은 표를 안겼다. 나는 그 발언을 직접 본 뒤로 1년 전 썼던 응원 글을 비공개로 돌렸다. 그때는 이준석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옹졸한지도 몰랐고, 그 당이 이준석 대권을 위한 정치공학용 정당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개혁신당에 조건부라도 응원을 보낸 것이 후회스럽다.


개혁신당에 붙지 못해 따로 떨어져 나간 새로운미래, 아니 새미래민주당. 별다른 소식이 없다가 이준석 대신 김문수에 붙었다는 소식을 알리며 존재하고 있음을 알렸다. ‘이재명 괴물 독재’를 저지하고, ‘국민 통합 공동 정부’를 꾸리기 위해서라는 분명 한국어로 발표했는데도 이해가 안 가는 이유를 대며.
결이 다르기는 하지만, 새로운미래도 제3지대 정당으로 꼽혔던 정당이다. 더불어민주당을 대체하겠다는 호기로운 출발과 달리 의석 단 하나를 얻더니만, 그 의원이 탈당한 뒤로는 원외정당이 되었다. 새미래민주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면서 민주당에 회초리를 들겠다고 주장했지만, 민주당과 이렇다할 차별성은 보이지 못하며 점점 뇌리에 흐릿해졌다. 그러던 그들이 이제는 민주당에 칼을 대며 이재명을 비상계엄 유발 세력이라고 주장한다. 당명과 달리 당세나 이념은 퇴행하고 있었다.
그 선언에 많은 사람이 분노를 표했다. 전직 국회의원과 비례대표 후보자가 탈당하고 김대중재단과 문재인정부 주요 인사 모임은 제명을 결정하고, 호남권 광역 의회에서 규탄 성명이 올라오고...
하지만 기사화되지 않았어도 누구보다도 화났을 사람들은 평범한 전라도 사람들일 듯하다. 그가 차린 정당은 한미했고 민주당과 이렇다 할 차별점이 없었다. 그럼에도 정당 투표에서는 전국 평균 득표율보다 높은 득표율을 얻었고, 본인은 민주당 후보에게 큰 격차로 낙선하기는 했어도 선거비용 반절 정도는 되돌려 받을 만큼 지지를 얻었다.
일말의 희망을 남긴 사람들에게 그는 배신으로 답했다. 45년 전 계엄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고 그 악몽을 끊어내지 못하게 하는 정당과 손을 잡는다는 것. 이것이 배신이 아니면 뭘까?
이제는 민주당계 정당이라고 말하기 어려워진 정당에 남은 절차는 국민의힘과 합당하면서 사라지는 것밖에 없을 듯하다. 어쩌면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 아니 새미래민주당이 여기서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제3지대라는 광풍 속에서 가장 많이 황폐해진 곳은 정의당이었다. 분당 전 정의당은 허구한 날 싸우는 대가족이 단칸방에 한 집 살림하는 형국이었다. 정의당이 더 왼쪽으로 가야 하는지, 오른쪽으로 가야 하는지. 정의당이 민주당과 친해져야 하는지 멀어져야 하는지. 당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앞둘 때면 항상 의견이 부딪치곤 했다.
총선을 앞두고 당 노선은 더욱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독자적이면서 선명한 진보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람들, 제3지대에서 새로운 정치 세력을 형성하자는 사람들, 민주당과 연합해 공동 선거 전선을 꾸리자는 사람들. 서로 다른 정파들이 각자 목소리를 내며 접점을 찾지 못하다, 당에서 끗발 좀 있다는 정치인이 각자 깃발을 들고 개혁신당, 새로운미래, 사회민주당, 조국혁신당으로 달려 나갔다.
마침 이번 대선은 분당 사태가 벌어진 지 1년이 지난 시점이기도 하다. 순간의 선택으로 각 정차는 오늘날 다른 결과를 받아들여만 했다. 우선, 제3지대로 가서 좌우를 아우르는 정당을 만들려는 시도는 완전히 실패했다. 정당을 주도하는 세력과는 겉돌고, 비례대표나 지역구 어디에서도 당선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총선 이후 당내 개편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했고, 결국 그들은 자의로든 타의로든 스스로 당을 떠났다.
민주당과 연대를 주장한 사람들이 차린 사회민주당과 개별적으로 합류한 조국혁신당에서는 목표했던 자리를 얻기는 했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위성정당에 참여하든, 지민비조 전략을 내세우든 민주당이라는 뒷배가 없었다면 의석을 얻지 못했다. 두 정당은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출마를 대신했다. 내란 종식이라는 명분도 명분이지만, 미약한 당세와 주도 인물 부재라는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정의당에는 독자적인 정당을 꾸리자는 사람들만 남아 총선에 녹색당과 함께 녹색정의당이라는 이름으로 출마를 하게 됐고, 결국 의석 하나 얻지 못했다. 국회에서 내쫓기고 빚에 쫓기면서 더욱 절박해진 사람들은 노동당과 민주노총 산별노조까지 끌어들여 대선에 출마했다. 토론회를 하며 많은 호응을 얻었지만, 정작 투표함에서는 예상했던 것보다도 적은 표를 얻은 쓰디쓴 결과를 마주해야 했다. 한적해진 단칸방을 채운 건 천장에서 떨어진 물과 어긋난 창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민주노동당 선거 결과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무슨 선택을 했던 정의당이라는 조직에 속했던 정치인에게 완벽한 해피 엔딩은 없는 듯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제3지대가 정의당을 뒤흔들었고, 그로 인해 큰 피해를 보았다는 것일 테다.
선무당 같은 정치 평론가나 언론이 한국 정치가 진영논리와 이념 때문에 망했다고 평하며 그에 대한 대안으로 제3지대를 무작정 띄우곤 했다. 그러나 단순히 중도나 제3지대를 표방한다는 이유로, 신선하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준 호의와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제3지대는 양당에서 외면받은 유력 정치인이 독자 세력화를 꾀하려는 명분에 불과했다. 그들이 세운 제3지대 신당은 새로운 가치관을 세우려는 도구가 아닌 그들의 무능함을 새로운 이미지로 갖추려는 선거 기획용 정당에 불과했고, 모여든 사람들은 다시 양당으로 사라지고 남은 사람들은 어디선가 익숙한 모습을 되풀이해서 보여줬다.
제3지대를 내세웠던 정당에서 새로움이나 혁신은 찾을 수 없었고 구태와 혐오만 남았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날 제3지대는 어느샌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모습을 확인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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