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을 반대하는 목소리에 드러난 청년 정치인의 이상한 모습들
지난주 국회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모습이 나왔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거대 양당이 대치 속에서 18년 만에 국민연금 개혁을 이뤄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언론에서는 환영과 함께 여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뒤따랐다.
개혁은 다른 방향으로 협력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법안 통과의 마지막 절차인 본회의 표결에서 기권이나 반대표를 던진 사람 중에는 청년 정치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상당수였고, 통과 이후 보수 정당 출신 대다수와 민주당 몇몇 의원이 한목소리로 개혁안 비판 성명을 내기도 했다.
일반 청년에게 국민연금은 그림의 떡이다. 연금 수령은 먼 훗날의 일이고, 지금 당장은 보험료를 내기만 할 뿐이다. 법 개정으로 국가의 국민연금 지급 의무와 재정 기여 의무가 더욱 강화되었다고 하지만, 지금 청년에게 와닿는 건 당장 월급에서 더 많이 떼일 보험료다.
커뮤니티에서는 국민연금에 대해 더욱 부정적이다. 시기의 문제일 뿐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국민연금 고갈은 확정된 상태에서 이번 개혁으로 고갈 시점은 단 9년만 늦출 뿐이다. 국민연금 고갈에 관한 뉴스가 나올 때마다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리라는 확신은 커지고 국민연금을 없애라는 목소리는 거세진다. 이번 개혁안을 향한 반응도 비슷했다.
성명을 발표한 청년 정치인들은 이런 여론을 잘 대변하는 듯하다. 그러나 사실은 아니다. 청년 정치인들은 그런 여론을 대변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아야 했다. 오히려 어설픈 대변은 청년들에게 막연한 불안과 피해의식을 심어주고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들은 반대표를 던진 이유로 “연금개혁으로 가장 큰 부담과 책임을 지게 되는 청년세대를 설득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 담기지 않았다.”라는 점을 꼽았다. 보험료율은 단계적으로 인상하면서 소득대체율은 한 번에 올린다는 점을 지적하며 “86세대”는 꿀빨고 젊은 세대는 그들에게 착취당하는 듯한 인상도 심어줬다.
하지만, 청년들도 혜택을 보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보험료를 내지 않고도 가입 기간을 인정받는 크레딧 제도가 강화되었다. 둘째부터 자녀 수에 따라 최대 50개월 인정받는 출산 크레딧은 첫째와 둘째를 낳았을 때 각각 12개월, 셋째부터 18개월을 인정하고 상한은 없애기로 했다. 민주당에서 군복무 기간 100% 인정을 주장했으나 국민의힘에서 반대했던 군복무크레딧 연장은 6개월에서 12개월로 늘리는 것에 합의점을 찾았다. 강화된 혜택은 기성세대가 아닌 다음 해에 애를 낳거나 입대하는 청년부터 적용된다.
크레딧은 연금을 받을 나이가 돼서야 효과가 체감되기 때문에 연금을 내기만 하는 청년에게 당장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가입 기간이 는 만큼 지금 청년들이 받게 될 연금 수급액은 더욱 늘 것이고, 크레딧 재원에는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국민연금 재정을 두텁게 하는 또 다른 조치이기도 하다.
그들은 보험료와 소득대체율을 조절하는 모수개혁뿐만 아니라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 이건 말 잘했다. 구조개혁 또한 필요하다. 그런데 노후 보장 체계의 근본을 흔드는 만큼 해결책들은 훨씬 복잡하다. 공무원연금이나 군인연금 같은 직역 연금을 국민연금에 통합하는 방안, 기초연금을 개편하는 방안, 세대 간 연금 수령액을 조정하는 자동 조정 장치 등.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들을 논의하려면 긴 시간 동안 토론하는 수밖에 없다.
불이 났을 때는 일단 소화기라도 동원해 불을 끄고, 화재 원인을 찾아 개선하는 것은 불을 끈 뒤에야 가능하다. 이럴 때 모수개혁이라는 것은 소화기다. 쉽고 빠르고 직관적인 해결이다. 지금이라도 올리지 않는다면 나보다 더 미래 세대가 우리가 감당했어야 하는 몫보다 더 많은 부담을 떠넘겨 받아야 한다.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이 해결책이 적용돼야 아직 연금을 내야 하는 중장년층, 즉 “기성세대”들은 보험료를 한 푼이라도 더 내게 된다.
국회는 모수개혁안을 통과시키면서 구조개혁을 논의할 특위 또한 만들었는데, 특위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이럴 때 청년 정치인들의 의견은 더욱 의심스러워진다. 특위 위원을 13명에서 20명을 늘리고, 위원 중 절반을 3040 의원이 채워야 한다는 주장. 기자회견장에 선 어떤 의원은 불혹을 넘겼는데, 법적 청년은 만 34세까지이다. 그들의 정치적 발언력이나 위상을 높이고자 청년을 이용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드는 것이다.
청년 정치인들은 청년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그들이 진짜 청년층의 의견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것은 국회 합의안의 밑바탕이 된 지난 21대 국회에서 조직된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 의견과도 어긋난다.
공론화위원회는 국민연금 개혁을 어떻게 개혁할지에 대해 국민 의견을 듣고자 만들어졌다. 일반 국민 500명이 2박 3일 간 국민연금과 관련된 정보를 충분히 듣고 서로 의견을 교환했으며, 한국방송은 이를 생중계하기도 했다.(아래 영상 참고) 위원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더 내고 더 받는 (보험료율 9% → 13%, 소득대체율 40% → 50%)을 소득 보장안과 더 내고 받는 돈은 그대로인 (보험료율 9% → 12% 인상) 재정 안정안 중 하나에 투표해야 했고, 최종 투표에서는 소득 보장안이 더 많이 지지를 받았다. 보수 언론과 정치인은 청년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포퓰리즘식 의사 결정이라는 지적을 내놨다.
하지만 20대의 선택이 밝혀지자 그런 지적은 무색해졌다. 20대에서도 재정 안정안(44.9%)보다 소득 보장안(53.2%)을 더 많이 지지했다. 30대에서는 재정 안정을 우선시하는 사람이 더 많았지만, 소득 보장을 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 두 안 간 차이 (재정 안정안 51.4%, 소득 보장안 48.6%)는 불과 2.8%였다. 청년들도 국민연금으로 노후 소득을 두텁게 보장받고 싶어 하고, 국민연금이 노인 빈곤을 줄이는 데 이바지하는 쪽에 좀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나를 포함한 이 땅을 밟고 살아가는 청년은 피터팬이 아니기에 언젠가는 노인이 되고,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세대 유불리에 따라 복지정책을 논한다면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오늘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이 정신은 부질없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을 포함한 노인 복지가 두터워지면 지금의 나는 당장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노인으로서 나는 그 혜택을 누리며 존엄하게 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국민연금이 두터워지면 청년 세대로서 자식으로서 부모를 부양하는 부담이 조금이나마 줄어들 수 있다. 이걸 바라는 나 같은 사람 시선에서 소득 대체율이 공론화위원회 안보다 후퇴한 걸 비판할 수는 있어도, 청년들만 오롯이 짐을 짊어지는 개혁이라는 비판은 부당하다.
반대를 위한 반대. 청년 정치인을 자처하며 개혁안에 반대했던 의원들에게 들어맞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이럴 때 청년 정치인들이 초점을 맞출 곳은 세대 분열이 아니라, 각자도생에 시달리는 이 땅의 청년이 그나마 노후라도 편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한편, 청년에게 복지 정책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보였던 행동에서는 이런 책임 의식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꿍꿍이가 검은 반대를 위한 반대는 그들에게만 이롭다. 그리고 그들이 청년들에게 심은 피해의식은 결국 사회와 국가와 복지정책에 대한 불신이라는 자승자박으로 돌아올 것이 뻔하다. 청년으로서 내가 그 자리에 선 청년 정치인들을 안 좋게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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