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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은 갑자기 발동된 것이 아니다

여의도

by 드파랑 2024. 12. 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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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그가 왜 계엄령을 저질렀는가에 관해 영화 서울의봄을 보고 필받아서 질렀다든지, 대통령 권한이라서 무심코 한번 써봤다든지 등으로 추측할 정도로 사람들은 계엄령을 내린 동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단지 음모론으로 치부되었던 계엄령 경고가 현실이 된 것처럼,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그의 기기괴괴한 행적을 되돌아보면 계엄령은 예견된 일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 전격 선언(2022. 3. 20.)

국민 여러분, 대통령 집무실의 이전이 간단하거나 쉬운 일이 아님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렵다고 또다시 국민과의 약속을 져버린다면 이제 다음 대통령 누구도 이것을 새로이 시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무엇보다 소수의 참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공간 구조로는 국가적 난제와 그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습니다.
공간이 그 업무와 일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받들고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대통령의 권위보다 더욱 중요합니다.
-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대통령실 용산 이전 기자회견 중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은 앞으로 그가 보여줄 수많은 촌극의 시작이었다. 원치 않은 촌극을 목격한 대중들은 그가 대통령 ‘당선자’ 신분이었을 때부터 기대를 접었다.

 

청와대의 권위주의성은 여러 정권에서 지적된 바 있다. 옮기자는 이야기가 왕왕 있었지만, 건설에서 이전까지 드는 만만치 않은 비용, 이전 지역이 군사보호구역이 됨으로써 주변 지역에 가해지는 불편, 그로 인해 찾기 어려운 적절한 입지 등이 걸렸다. 그나마 그가 그토록 욕했지만 비교 자체가 민망한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 완전 이전 공약을 지키지는 못했어도 직원동에 실무 집무실을 설치함으로써 집무실 공간 개혁을 시도했다.

 

선언이 나왔을 때만 해도 체계적인 계획과 이전에 관련된 상황 점검, 여론 추이를 지켜보며 추진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취임 전까지 국방부가 방에서 나가야한다는 택도 없는 계획을 고스란히 실현시켰다. 집무실을 잘만 옮기면 국민 호응 속에서 일사천리 진행되어 그의 업적으로 남았겠지만, 그의 '해줘' 식 집무실 이전은 혼란과 반대 속에서 마무리되어 찜찜함만 남겼다. 

 

그는 청와대가 제왕적 권력의 상징이라며 시간을 더 끌어서는 이전할 수 없어서 이전을 결심했다고 한다. 모순되게도, 대통령실 이전은 국민 반대와 전임 정부와의 불협화음 속에서 강행되었고, 집무실을 옮긴 뒤에 그가 보인 모습은 야당과 언론에 대한 적대와 불통이었다. 의대 증원, 과학기술 투자 예산 삭감, 노동 개혁 등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정책들이 이런 식으로 처리되었고, 이것들이 반복되니까 계엄령을 내질러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을 테다. 

 

청와대가 민주주의 시대에 걸맞지 않는 공간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번 계엄령 정국은 대통령 권력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제도’적 결함과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이 일으키는 문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만 일깨워줬다.

 

 

주어가 바이든였든 국회였든(2022. 9. 22.)

 

(미국) 국회에서 이 새끼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냐?
-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가 끝나고 나서

 

너무나 명확히 들리는 이 문장을 지독한 우기기 때문에 우리는 초등학교 받아쓰기처럼 반복적으로 들어야 했다. 이때 그가 경솔한 언행을 진솔하게 사과하고 바꿨다면, 전국민 듣기 평가를 반복할 일도 오늘날의 촌극을 볼 일도 없었을 테다. 하지만, 그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대통령실과 여당, 보수 언론을 동원해 이 문장이 대한민국 국회를 향해 한 말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해명만 늘어놓았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이 새끼들이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 (내가) 쪽팔려서 어떡하냐?
- 9월 22일, 김은혜 당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22일 뉴욕 프레스센터에서 한 브리핑 중

 

그렇게 그는 대한민국 헌법기관 국회를 공공연하게 모욕하고, 시민을 농락했다. 그리고 있는 말을 그대로 전한 문화방송은 대통령 전용기 탑승 불가라는 만만치 않은 뒤끝을 감내해야 했다.

 

이 어이없는 우기기와 자기중심적 해명, 탓하기, 사과 안 하기는 계엄령에서 반복되었다. 계엄령 담화에서는 야당을 반국가세력으로 몰아붙이더니 게엄령 해제 담화에서는 야당 때문에 이 사달이 일어났고 국회가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는 훈계를 잊지 않았다. 사람들을 밤을 지새우게 하고서는 글을 올린 지금까지도 시민들을 향해 단 한 차례도 사과하지 않았다.

 

이 경솔한 언행을 바로잡지 못한 결과는 국경 밖에도 영향을 미쳤다. 저 한마디를 성찰했다면 한미 관계가 위험해질 뻔한 소동 정도로 그의 흑역사는 끝났을 것이다. 그에 비해 계엄령은 국제 사회와 금융 시장에서 대한민국 신인도 하락이라는 무지막지한 영향을 미쳤다.

 

 

반국가세력(2022. 10. 19.)

 

자유민주주의에 공감하면 진보든 좌파든 협치하고 타협할 수 있지만, 북한을 따르는 주사파는 진보도 좌파도 아니다. 적대적 반국가 세력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
- 서울 용산 국방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원외 당협위원장 초청 오찬 간담회 대화 중

 

그래. 집무실이야 필 받으면 당장 옮길 수 있고, 욕설이야 안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렇다고 백번 이해해 주자. 계엄령에서도 나온 반국가세력이라는 단어가 처음 나온 이때, 나는 그의 언어가 으름장이 아닌 민중의 자유를 옮아매려고 했음을 간파해야 했다.

 

취임식에서 그가 지겹게 언급했던 자유가 6, 70년대 반공주의식 자유기는 했어도, 반국가세력은 일절 나오지 않았다. 세계 시민이라는 단어는 국제 사회가 한국에 요구하는 수준을 맞추고, 국제 사회에 여러 방면으로 기여하리라는 기대를 품게 했다. 적어도 내부 사람을 적으로 돌리는 단어는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간담회를 계기로 반국가세력은 잊을만하면 나오는 단어가 되었다. 여러 경축식 중에서 가장 상징성이 커서 대통령들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는 광복절 경축식이나 국정을 논의하는 국무회의에서조차 반국가세력이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반국가 세력이 야당과 언론, 정권을 비판하는 시민을 지칭함이 점점 확실해졌다.

 

사람들은 대통령 한마디 한마디에도 의미를 둔다. 연설문 작성만을 담당하는 사람이 있고, 연설문 작성에만 몇 날 며칠이 걸린다는 것이 그 중요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의 주변은 그의 고집이나 적대적 사고방식을 바꿀 사람이 없었던 듯하다. 누구에게도 통제받지 않은 그의 언어는 권한이 없는 데도 모든 정치활동을 금하고, 사람이 태어나면서 당연히 주어지는 언론/집회의 자유를 가로막으려 하는 데에 이르렀다.

 

 

시민이 죽어도 내 주변 사람은 못 잃어(2022. 10. 29.)

(경찰에 대한) 일체의 지휘 권한이 없다. 법적 책임은 당연히 없다. 도의적이나 정치적인 책임은 있을 수 있다.
-
2022년 11월 8일, 국회 예결위원회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으로부터 '(행정안전부에) 경찰에 대한 지휘 권한과 책임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렇게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피해 가려 했다. 몇 개월 전 경찰을 민주적으로 통제한답시고 숱한 논란을 무시하고 행정안전부 경찰국을 만들어 놓고서는, 정작 이 자리에서는 행정안전부에 경찰을 지휘할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뻔뻔함 덕분인지 몰라도 국회가 해임건의안과 탄핵안을 통과하면서까지 도의적 정치적 책임을 물었음에도 오늘날까지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채상병 사망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다고 알려진 임성근 해병대 소장 또한 군인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사건이 1년을 넘기고 불러도 돌아오지 않는 그 이름은 살아 있었다면 전역을 앞둔 이 시점에서 전 사단장은 기소 여부조차 판가름 나지 않은 반면, 외압을 폭로한 박정훈 대령은 1심에서 항명죄로 징역 3년 형을 구형받았다.

 

이처럼 그는 대통령이 되고서는 맘에 안 드는 사람은 끔찍이도 아끼고, 맘에 안 드는 사람은 어떤 수로든 내치는 행태를 반복했다. 국정을 총괄한다는 사람이 편가르기를 하고, 무능력한 사람을 중요한 자리에 앉혔다.

 

초반에는 검사 출신 인물들이 주요 요직에 앉았다면, 최근 들어서는 이진숙(방송통신위원장), 김문수(경제사회노동위원장, 고용노동부 장관), 김형석(독립기념관장), 안창호(국가인권위원장) 등 차별적이거나 반인권적이거나 몰상식적이거나 혹은 셋 다 해당하는 발언을 이어 온 극우적 인사들이 공직에 잇따라 임명되었다. 인사를 할 때마다 여러 우려가 쏟아져 나오지만, 그는 괘념치 않는 듯하다.

 

그가 아끼는 또 다른 인사 라인은 충암파다. 충암고 졸업생 라인 충암파를 대표하는 인물은 이상민, 그리고 계엄령을 선포하라고 꼬드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있다. 이렇게 보니 김용현이 꼬드기지 않았다면 이상민이, 그가 아니라면 극우 인사들이 계엄령을 꼬드겼을 것 같다.

 


 

자 이제 3시간짜리 촌극이 이제 이해가 되는가? 그는 자신의 감정과 심리를 주체하지 못한 채 즉흥적으로 계엄령이라는 상상도 못 한 일을 덜컥 벌였다. 하지만, 정당한 명분과 체계적인 계획, 많은 사람의 동의를 구하지 못한지라 계엄령은 너무 허술해졌다.

 

지시를 받긴 했는데 도저히 따를 수 없었던 계엄군 병사 대부분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능력을 절반도 안 되게 발휘하며 지시를 이행하는 척하다 떠났다. 그 시각 잠자리에 들려 했던 군인 대부분은 뉴스로 계엄령이 내려진 사실을 알았다. 계엄사의 통제를 받았어야 했던 언론은 당황함을 떨치고 실시간으로 자유로이 계엄군을 취재했다. 여당 대표마저 계엄령은 위헌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했다.

 

오히려 결기가 느껴졌던 것은 담장을 넘으면서까지 필사적으로 본회의를 열려 했던 국회의원들, 어려운 싸움임을 알면서도 계엄군과 몸으로 부딪치며 마주했던 국회 직원과 보좌관들, 그리고 계엄령이 떨어졌다는 소식에 국회로 모여든 시민들이었다. 사람들이 각자 할 일을 하고 힘을 모았기에 우리는 그의 천하를 단 세 시간 만에 끝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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