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에 꽃내음이 느껴지고 세상이 초록색으로 물드는 요즘, 진보정당 지지자들은 또 한 번 싱숭생숭한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진보당은 3석을 얻었지만, 정의당은 국회에서 내쫓겼고, 진보정당 합산 득표율은 사상 최저다. 특히 독자 노선을 고집했던 녹색정의당과 노동당, 논란을 무릅쓰고 위성정당에도 참여한 진보당의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민주당으로부터 자립은 철저한 준비 없이는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다.
하지만 좌절은 이번주까지면 족하다. 2년 뒤부터는 지방선거 – 대통령선거 - 국회의원선거 순으로 해마다 선거가 치러질 예정이다. 이럴 때 조롱과 비난, 손가락질은 아무 쓸모가 없다. 냉철한 현실 파악과 유연한 선거 전략, 조직 기강 정비 등 세력 복원을 위한 행동을 한다면 진보정당의 봄은 좀 더 일찍 찾아올 것이다.
그러려면 진보정당이 어떤 결과를 거뒀는지를 파악해야 하는데, 두 차례에 걸쳐 이번 선거에서 나온 결과를 진보정당 지지자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지역구 순서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당은 21명, 녹색정의당은 17명, 노동당은 울산 동구에 후보를 각각 공천했다. 그들은 나름대로 분투를 했고, 그 결과는 제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각 후보의 득표 현황과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필승 공식, 단일화 – 울산 북, 부산 연제
윤종오가 진보정당 유일 지역구 당선자가 된 이유, 노정현이 진보정당 낙선 정치인 중 가장 많이 득표한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의 노력 또한 중요했겠지만, 단일화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두 후보는 민주당과의 경선에서 승리해 단일 후보 자격을 얻었고, 각자 고무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
울산 북구는 울산 동구나 창원 성산구와 함께 노동자 정치가 활발한 곳으로 꼽힌다. 이상헌이라는 지역 정가에서 제법 자리를 잡은 정치인을 꺾을 수 있었던 것은 현대자동차 노동자의 결집 덕분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당선증을 거머쥐었다.
노정현의 선전은 울산 동구보다 극적이다. 부산 연제구는 부산광역시청을 중심으로 하는 광역 행정 단지와 법원/검찰청 법조 단지가 있는 곳이다. 중산층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이라 기존 진보정당들이 기반으로 삼았던 지역과는 정치 지형이 상당히 이질적이다. 더욱이 단일화 경선에 참여했던 민주당 측 인사는 연제구청장을 지내기도 했다.
두 차례 여론조사(부산일보/부산MBC 의뢰, KSOI 시행, 3월 20일, 4월 3일 발표) 상에서 노정현 후보가 국민의힘 김희정 후보를 앞섰고, 출구조사에서는 박빙 승부가 예상된 것과 달리, 실제 개표는 10% 가까이 차이가 났다. 조사에서 보수층 여론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거나 여론조사를 확인한 보수층 지지자들이 국힘 후보에게 결집했거나 해서 조사와 실제가 괴리가 있었지만, 어쨌든 후보에게는 절반 가까운 득표를 얻은 것만으로도 고무적이다.
단일화 필승 공식은 또 한 번 증명되었지만,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아 있다. 진보 4정당 간 단일화는 끝내 무산되었고, 진보당이 민주당과 단일화에서 승리를 거둔 곳은 부산 연제 단 한 곳뿐이었다. 진보정당 지지자는 이런 사실이 못마땅할 수 있지만,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여야만 극복할 수 있다. 그것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아래와 같은 결과를 계속 맞이하게 될 것이다.
흔들리는 지역 기반 – 인천, 경기 고양 갑, 경남 창원 성산, 울산 동
정의당 최대 계파 중 하나인 인천연합. 그 위상에 걸맞게 이정미와 배진교 등 인천을 지역구로 삼은 중견급 정치인들이 있어 선전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참혹했다.
이정미는 투병으로 출마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가운데, 배진교는 현역 의원의 비리 연루 및 민주당 탈당이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권을 타도를 위한 불출마를 선언해 버리며 정의당 지지자를 허탈하게 했다.
결국 인천에서 출마한 후보는 한국GM이 소재한 인천 부평 을의 김응호 한 명이었고, 성적은 참담했으며, 정당 득표율도 평균을 살짝 상회하는 수준이다.
저번 선거에서 오뚝이 같이 살아남은 심상정, 정의당 지지자들은 이번 선거에서도 그런 기적을 바랐지만, 그것은 이뤄지지 못했다.
심상정의 지역구 다지기 능력은 진보정당 내에서 제일이었다. 전체 4선 중에 고양 (덕양) 갑에서만 3선, 세 차례 지역구 선거 중 단일화 없이 치른 선거가 두 차례였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게다가 고양 갑은 고양시청이 있는 행정 중심지이자 베드타운인 동시에, 고양시 내에서 농촌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구이기도 했다. 고양 갑에서 살아남은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웠다.
심상정의 영향력이 막강했던 한동안은 고양 갑에서 정의당 소속 도의원과 시의원이 배출되기도 했지만, 민주당세가 강해지고 진보정당과 민주당 간 관계가 멀어지면서 심상정의 지역구 장악력은 날이 갈수록 떨어졌다. 2020년 총선에서는 민주당에서도 중앙당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유세를 나섰고, 위기감을 느낀 후보는 읍소 전략을 펼치며 총선에서 어찌어찌 살아남았다. 하지만, 2022년 지방선거에서는 해당 지역구에 출마한 정의당 후보들이 모두 낙선해 지역 조직력이 상당히 약해졌다.
심상정은 끝내 낙선과 비호감 정치인, 진보정치 몰락의 상징이라는 멍에를 스스로 짊어지며 은퇴를 선택했지만, 그런 와중에도 20% 가까운 득표율과 252개 시/군/구 중에서 가장 많은 표를 녹색정의당에 안기며 노장의 품격을 보여줬다. 이제 정의당은 심상정이 남긴 자리를 힘에 부치더라도 잘 지킴으로써 그의 헌신에 보답해야 할 것이다.
창원 성산구는 권영길과 노회찬의 정치적 기반이 되어준 지역이었다. 여영국은 그 바통을 이어받아 1년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그 뒤로 치른 두 차례 총선에서 낙선을 거듭했다. 20년과 이번 총선에서 단일화가 무산되었는데, 이것이 전략적 실패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성산구는 창원국가산업단지 노동자 많이 모여 살지만, 보수정당이 강세를 보이는 경상남도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단일화가 더더욱 필요한 지역이다. 민주당 후보가 안 나올 때는 진보정당 간 후보끼리 경쟁해 사이좋게 낙선하기도 했다. 노회찬과 후보 본인이 당선될 수 있었던 요인에는 민주당과 단일화를 무시할 수 없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후보 본인이 민주당과의 단일화를 거부했고, 결과는 선거비 보전도 못 받게 생겼다. 결과가 이리 나오니 정의당은 지역 기반 하나를 통째를 잃는 건 아닌지 걱정해야 한다.
울산 북구와 함께 울산의 노동자 정치 중심지인 동구. 이곳에서는 이중 단일화라는 상상도 못 한 일이자 눈 뜨고 못 볼 일이 벌어지면서 유일한 노동당 공천 후보가 낙선했다.
이중 단일화의 내막은 이렇다. 원래 노동 – 정의 – 진보가 민주노총 주도 하에 진보정당 단일화를 추진했고, 울산 동구에는 이장우 후보가 민주노총 공식 후보가 되었다. 그런데 진보당이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함과 동시에 지역구 단일화를 선언했고, 이 과정에서 진보당은 민주당 후보와도 단일화를 했다.
이에 격분한 노동당은 녹색정의당과 부울경에서 정치 연대를 형성하고, 민주노총에서는 격렬한 논의 끝에 민주노총 공식 후보로 이장우 후보만을 인정하기에 이르렀으며, 진보당 울산시당은 뒤늦게 이장우에게 힘을 보탰다. 하지만, 그것으로 김태선 후보의 당선, 이장우 후보의 저조한 득표를 막을 수는 없었다.
울산 동구는 유일한 진보정당 소속 기초자치단체장인 김종훈이 있어 지역 기반이 흔들릴 위험은 상대적으로 적다. 대신 여기서는 민주노총과 진보정치를 걱정해야 될 상황이다.
민주노총은 이번 선거에서 단일 진보정당 구축을 시도했으나, 정의당과 진보당은 입장 차이를 보이며 끝내 단일 정당을 꾸리지 못했고, 민주당 위성정당에 참여한 진보당은 재벌 기득권 정당을 정치 협력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민주노총 정치 방침을 대놓고 여겼음에도 노총은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진보정치의 난맥상이 고스란히 투영된 선거구라고 할 수도 있겠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정의당과 진보당 - 호남, 경북 경산
정의당과 진보당은 기어이 지역구에서도 싸움을 벌였다. 선거구 네 곳에서 싸운 결과 1:3으로 진보당이 승리했다. 이겨서 기분 좋다고? 어차피 사이좋게 낙선했고, 선거비로 쌓인 빚이 기다리고 있는데?
강은미 후보는 정의당 지역구 후보 중 두 번째로 많은 표를 얻었다. 현역 프리미엄도 있었고, 지역구도 제법 관리를 잘 한 듯하다. 하지만, 선거비 전액 보전에는 0.34% 못 미치는 득표율을 얻었는데, 만약 진보당 후보와 단일화를 했더라면 선거비 전액 보전은 물론 20% 벽 부수기에 도전할 수도 있었다.
김용재 후보는 진보 정당 후보 중에서 가장 낮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검수완박 정국에서 앞장섰던 민형배나 대선 후보 문턱까지 이르렀던 이낙연을 꺾기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렇게 낮은 득표율을 보니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목포는 숨겨진 정의당의 지역 기반이다. 비례대표를 한 차례 했던 윤소하 의원은 목포를 기반으로 했고, 참담히 패배했던 2022년 지방선거에서 몇 안 되는 지역구 기초의원을 배출했던 지역이었다. 그런 지역에 출마한 후보가 진보당보다도 못한 성적을 거뒀다.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친박의 귀환으로 주목을 받았던 경북 경산은 2강 2약 구도로 선거가 진행됐다. 선거가 이렇게 된 데에는 단일화가 안 된 탓이 크다. 최경환이나 조지연은 범 보수정당 후보이다. 만약 둘 중 하나로 단일화를 했더라면 진보정당 지지층뿐만 아니라 두 후보를 지지할 수 없는 민주당 지지자, 참신한 정치인을 원하는 무당층/중도층들이 안심하고 표를 던질 수 있었을 것이고, 진보정당 단일 후보는 두 후보와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현직 국회의원의 성적표는? – 서울 마포 을, 서울 관악 을, 전북 전주 을
진보정당에 국회 경험이 있는 정치인은 소중한 자산이지만, 그런 정치인조차 바람이 불면 심상정과 강은미처럼 떨어질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래에서 살펴 볼 다른 전현직 국회의원들 또한 그랬다.
서울 마포 을은 홍대거리와 디지털미디어시티가 있어 청년, 그중에서도 문화계나 사회운동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은 지역이고, 지난 총선에서 정의당 후보가 10% 가까운 득표를 받았다.
장혜영이 받은 8%는 희망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득표율이다. 현역 프리미엄을 안고도 그 정도를 받았냐는 평가가 나올 수도 있겠고, 정의당 조직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그나마 이 정도 받았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좀 더 크긴 하다.
서울대가 위치한 서울 관악 을은 그동안 진보정당이 비빌만한 언덕 중 하나였다. 이곳에서 당선된 이상규는 위헌정당 해산으로 인해 직을 얼마 못 가서 잃었고, 16년 총선 이후 8년 만에 다시 출마했다. 화려한 부활을 꿈꿨겠지만, 그 꿈은 아주 처참하게 짓밟혔다.
당초 관악 을은 다른 지역에서 그랬던 것처럼 민주당 – 진보당 단일화가 이뤄져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민주당 측 후보가 역선택을 이유로 거부한 것이 그 이유인데, 어쨌든 결과는 민주당 당선이었기 때문에 민주당은 아쉬운 것이 없다.
정계에서는 직전 해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은 다음 해 총선에서도 이긴다는 속설이 있지만, 강성희는 그 속설의 덕을 보지 못한 것은 물론 3위로 밀려났다.
물론 그가 상대한 경쟁자들이 결코 만만하지는 않았다. 이성윤은 윤석열에 맞서도 봤고 민주당 당적을 달고 나왔으므로 윤석열 심판 정서가 불어 닥친 판국에 당선이 안 되는 것이 이상했다. 정운천은 보수정당 소속임에도 해당 지역구에서 당선된 경험이 있을 정도로 치열하게 지역구 관리를 했다.
여영국도 속설 덕을 보지 못한 것 보면 속설이 진보정당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보수정당 후보로서 당선된 정운천 사례처럼, 열심히 하다 보면 강성희에게도 언젠가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까지 진보정당 당적을 달고 지역구에 출마해 준 후보들을 살펴보았다. ‘출마해 준’이라고 한 이유는 소선거구 하에서 보수계와 민주당 사이를 진보정당 정치인이 끼어들면서 출마한다는 것 자체가 큰 희생이기 때문이다. 선관위에서 선거비용을 반액 되돌려 받을 수 있는 지지율 10%조차 진보정당 후보에게는 커다란 산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 정당을 떠나 지역구에 출마한 모든 진보정당 후보에게 애썼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그리고 자료는 진보정당 후보가 출마한 모든 지역구를 대상으로 만들었지만, 공간 한계 상 다 싣지는 못했다. 모든 후보의 득표 현황을 보고 싶다면 아래에 있는 압축 파일을 내려받아 볼 수 있다.
※ 그림에서 보이는 모든 수치들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정보시스템(http://info.nec.go.kr/)을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글에서 인용한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를 참고하시기 바라며, 발표일에 해당 조사로 가는 링크를 걸어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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