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총선에서 진보정당이 살아남기 위한 전략은?
올 총선은 2008년 총선과 더불어 진보정당에 가장 어려운 선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몇몇 진보정당 지지자는 다음 국회에서 진보정당 출신 국회의원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마저 한다. 대중에게 대안정당으로서 호소하지 못한 데다가 극단적 진영 정치로 인해 진보정당에 관한 관심은 예전만 못하다.
이에 따라 정의당 내 중도/보수적인 세력은 노선 차이를 이유로 각자 살길을 찾았고 말 그대로 사분오열이 되었다. 어느 때보다도 진보정당들은 살아남고자 수많은 합종연횡을 시도하고 고민하고 있다. 순탄한 길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과연 진보정당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제3지대: 확장인가 전향인가?
한때 금태섭신당이라 불렸던 새로운 선택에 참여한 세 번째 권력, 민주당 탈당파와 함께 새로운미래에 참여하는 대안신당당원모임. 이들이 주장하는 바는 세부적인 면에서 조금씩 다르지만, 결과적으로는 진보정당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제3지대를 좇으며 각자 정의당을 떠났는데, 조만간 개혁신당에서 다시 마주칠 예정이다.
정의당 선거 전략은 한동안 제3지대 정당론이나 중도층 공략이 주류였는데, 탈당파 인물 면면을 보면 이들은 나름대로 당내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들이라 목소리 또한 컸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해가 된다. 세 번째 권력을 이끈 조성주는 지난 당대표 선거에서 논란에도 불구하고 3위를 차지하며 세를 과시했고, 대안신당당원모임의 좌장 격 인사인 박원석은 비례대표와 사무총장을 두루 역임하며 당 안팎에서 활동했다.
그들은 정의당이 진보정당으로서 색채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선거에서 맨날 졌다고 생각해서 정의당을 유연화 내지는 중도화하는 것이 해결책이라 생각했다. 때문에 정의당이 좌파정당으로서 활약하기를 바랐던 사람들은 진보정당으로서 정체성을 없애려 한다는 불만이 컸었다.
이런 주장이 지나쳤던 세 번째 권력은 정의당 내 모든 계파, 심지어 정의당 내 우파로 불리던 참여계에도 비판을 들었다. 지난해 당대표 선거에서 조성주 후보는 6411버스에서 내려야 한다고 선언하며, 민주당 오른쪽에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노동계를 비롯한 전통적 지지층 관점에서는 정의당의 고유 정체성인 노동을 대놓고 버리자고 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어찌 됐든 그들은 앞으로 정의당보다 더 주목받고 당세도 큰 곳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글쎄…. 중도화 혹은 온건화가 정의당을 살릴 수 있는 처방이었는지도 의문이었지만, 지금은 그들이 다른 세력과 섞일 수 있는지가 의문이다. 아마 제3지대에서 다른 세력에게 설득력 있게 자신의 정체성과 생각을 잘 설득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안 그러면 전향 내지는 도망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채로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
민주당 위성정당: 명분만 좇기에는 의석이 너무 달고
얼마 전 이재명 대표는 22대 총선에서 준연동형 비례제로 선거를 치를 것임을 선언하면서 동시에 군소정당과 연합을 통해 위성정당을 꾸리겠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새진보연합은 민주당 위성정당 참여가 확실하다. 용혜인 의원 1인 정당 기본소득당과 민주당과 합당한 뒤 다시 뛰쳐나온 사람들이 차린 열린민주당, 아직 창당이 완전히 되지 않은 사회민주당이 모인 선거 연합체이다. 민주당이 위성정당 차리겠다고 선언하자마자 환영 의견을 가장 먼저 밝혔다. 특히 정의당에 남은 사람들은 사회민주당 창당을 상당히 반겼는데, 진보정당의 선명성을 해쳐왔거니와 민주당과 너무나도 친밀해서 탈이었던 참여계가 나갔기 때문이다.
민주당 위성정당은 민주당이 스스로 선거제 원칙을 훼손했다는 것부터 시작해, 군소정당이 지지율 대비 과대 대표되고 있다는 점, 용혜인 의원은 위성정당으로 한차례 당선이 되놓고도 또 한 번 위성정당 비례대표 후보로 당선을 노린다는 점 등등 비판거리가 많다.
그럼에도 민주당 위성정당은 군소정당에 매력적인 선택지일 수밖에 없다. 의석을 얻고 봐야 정치판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으니까. 그리고 며칠 전, 민주당은 새진보연합 뿐만 아니라 녹색정의당과 진보당에도 위성정당 참여를 제안했다. 그래야 위성정당이 더욱 면이 서기 때문이다.
명분 못지않게 실리가 중요하다는 것 잘 알고, 두 당에서는 들어가서 의석을 얻어야 한다는 현실론이 제법 나오는 듯하다. 하지만 내 심정으로는 당선자 하나 못 내더라도 위성정당은 쳐다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당은 때로는 구차하게 살아남는 것보다 명예로운 죽음이 더 값질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누군가의 위성정당이 되려고 선거제 개혁을 외친 것이 아니다. 이 마음은 민주당이 아닌 진보정당을 선택한 모든 사람의 마음이기도 하다.
녹색정의당: 1+1=1?
녹색당과 정의당이 서로 합쳐 22대 총선에서 선을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유럽형 정당 연합을 처음 시도하고, 가장 신좌파스러운 원내 정당이 되었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민주당 위성정당과 녹색정의당의 차이는 그 정당이 지역구에 후보를 내느냐 안 내느냐로 갈린다. 민주당은 지역구에서 정당 득표율 대비 초과의석이 상당수 발생했지만, 위성정당이 있어서 비례대표 의석도 챙겼다.
이에 반해 녹색정의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후보 모두를 녹색정의당 이름으로 공천한다. 행복한 망상을 하자면, 녹색정의당은 지역구에서 정당 득표율 대비 더 많이 의석을 가질 경우 비례대표 의석을 한 석도 가져가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이중 당적이나 정당 연합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녹색당 대표와 후보들이 정의당에 입당하고 정의당은 당명을 바꾸는 복잡하고 누군가는 이해하기 어려운 형식으로 선거 연합을 구성했다. 어쨌든 대한민국에서 실질적인 첫 정당 연합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문제는 당위성이 충분하고 명분도 좋지만, 선거 공학적으로 그것이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새해가 시작된 이래로 정의당 정당 지지율은 최근 리얼미터나 한국갤럽에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비례대표 봉쇄조항인 3%를 밑돌고 있고, 녹색당은 당원 수가 만 명도 되지 못하는 정당이다. 정의당도 군소정당이라지만, 녹색당은 창당 이래 국회 진출을 한 번도 못한 진또배기 군소정당이다. 티끌 모아 태산을 이룬다지만, 평범한 사람들 눈에는 티끌끼리 뭉치는 걸로 보여서 티가 잘 안 난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조사 결과 참고.)
어쩔 수 없이 녹색정의당은 선명한 신좌파적 가치를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다. 정의당은 온건화/중도화를 주장했던 세력이 빠지면서 정의당 본래 정당 이념이었던 사회민주주의나 당내 강경파에서 주장했던 민주사회주의를 더욱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게 되었고, 녹색당은 창당 이래 줄곧 생태주의 이념을 역설한 정당이었다. 이 두 당이 만남으로써 우리나라에서 다른 의미로 가장 좌파스러운 정당이 되었다.
정의당은 불평등을 녹색당은 기후위기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불평등과 기후위기가 심각하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시민은 거의 없다. 선거 공학적인 합당이 끝났으니 이제는 그들이 평소에 집중적으로 비판을 제기했던 문제를 해결할 만한 공약과 정책을 내놓는 것이 중요해졌고, 대중들이 그 해결책을 타당한 것으로 여긴다면 지지율은 오를 것이다.
독자 노선: 정면 돌파와 고난의 행군 그 사이
이 이합집산의 길 중 아무 것도 들지 않은 당에는 독자 노선이라는 힘든 길이 놓여 있다. 노동당, 미래당, 진보당은 자의로든 타의로든 이 길을 선택했다.
세 정당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곳은 진보당이다. 일단 진보당은 어느 정당보다도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80명 가까이 되는 후보를 1년 전부터 공천하면서 지역구 표밭 다지기에 어느 정당보다도 열심이었다.
그리고 진보정당 중에서는 반윤 정서를 가장 강력하게 호소하는 정당이다. 정당 현수막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나 검찰 독재(?)를 지속적으로 밀고 있으며, 대통령실은 강성희 국회의원의 기념식 강제 퇴장 사건이라는 좋은 그림도 만들어줬다.(대통령이 강성희를 올해 정기국회에서 또 만나고 싶었나 보다.) 선거 전략 변화로 일부 민족주의적 성향 계파가 탈당하면서 특유의 친북 색채는 살짝 옅어졌다.
대통령은 진짜 싫고 그렇다고 민주당을 뽑기에 마뜩잖은 사람들에게는 진보당이 제법 괜찮은 선택지가 되었고, 어쩌면 지난 지방선거처럼 정의당보다 선전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다. 다만, 녹색정의당보다는 민주당 위성정당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관측이 있는데, 부디 기우이기를 바란다.
지역구 단일화: 하기 싫지만 할 수밖에 없는 것
그리고 이렇게 독자 노선을 선택한 정당조차 지역구 단일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단일화를 주도하는 세력은 민주노총이다. 2년 전 민주노총-진보정당 연석회의를 결성했고, 진보 정치 세력화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노동자 세력이 정치판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울산에서는 민주노총 주도로 이미 각 선거구에 진보당이나 노동당 후보로 단일화가 성사되었다.
여기에 진보정당 외 다른 정치 세력이 단일화를 제안해 올 수도 있다. 제3지대에서는 아직 소식이 없는 가운데, 민주당은 위성정당 구상과 동시에 위성정당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지역구 단일화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나름대로 인물들이 지역 기반을 갖췄거나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 없는 지역(인천 남동 을/연수 을, 경기 고양 갑, 전북 전주 을)이나, 노동 강세 지역(울산 전역, 경남 창원 성산)이 진보정당 후보로 단일화할 수 있는 곳으로 꼽히고 있다. 이렇게 되면 진보정당에서 지역구 의원 배출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
물론 민주당이 손해 보는 장사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이 엉겁결에 얻은 180석은 국회 내 권력을 강화하기도 했지만, 잇따른 머릿수 밀어붙이기로 인해 국민에게 피로감을 안겼고 여당에 국회 독재(?)라 공격할 빌미도 줬다. 분에 넘치게 의석을 차지해서 혼자 욕먹을 바에는 차라리 몇 석 정도는 군소정당에 내줘서 욕도 덜 먹고, 우군을 많이 얻겠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그리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단일화 대가로 진보정당 후보가 불출마함으로써 민주당 당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아무튼 진보정당은 단일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력이 미미하고 지역 기반이 없다시피 한 진보정당에서 지역구에 출마하는 소속 정치인들은 억 단위가 드는 선거비용을 전액 못 건질 상황을 각오하고 출마해야 한다. (이래서 심상정 불출마가 사치라는 거다.) 그리고 지역구는 정당보다는 후보 위주로 치르는 선거이기 때문에 정당 정체성을 지킬 수도 있다.
위험은 줄이고 당선 가능성은 높이는 만큼 단일화는 각 진보정당이 가능성을 열어 둬야 한다. 일단은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단일화에 적극 나서는 것이 먼저다. 그 뒤로 여건이 괜찮다면 다른 정당과의 단일화 협상을 진행해도 좋고.
진보정당의 꽃밭을 찾아서 ② - 비례대표 (0) | 2024.04.14 |
---|---|
진보정당의 꽃밭을 찾아서 ① - 지역구 (0) | 2024.04.13 |
제3지대는 언제든 환영이야! (0) | 2024.02.11 |
피할 수 없다면 늘리자 의석을! (0) | 2023.01.24 |
우리에게 필요한 건 좀 더 나은 비례대표제 (0) | 2023.01.20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