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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버스는 이번 기회에 무엇을 바꿨어야 했나?

천안삼거리

by 드파랑 2024. 1. 2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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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화통 터지는 2024년 천안 시내버스 개편안 유감] ②

 

한없이 늘어지는 배차 간격

전국을 덮친 코로나에 주 52시간 노동제와 5030 안전속도 도입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도시는 한동안 배차 간격을 늘렸다. 문제는 일상으로 돌아온 지 한참 지났건만, 천안은 늘렸던 배차 간격을 되돌리기는커녕 오히려 늘려버렸다는 점이다.

 

2024 시내버스 개편안 주요 시내권 노선 운행 횟수와 배차 간격 현황. 기존 노선, 새로 생겼거나 조정된 노선으로 나눠 운행 횟수가 가장 많은 순서대로 나열했다.(2번과 7번은 번호는 다르지만 같은 경로로 운행하는 노선이기 때문에 하나로 간주함.)

 

기존 노선 중에서 운행 횟수가 실질적으로 늘어난 버스는 손에 꼽고, 시내권에서는 다른 버스보다 빠르다는 입소문을 타고 이용객이 늘고 있는 급행 5번(27회 → 48회), 태조산과 각원사를 잇는 51/52번(통합 16회 → 23회)이 전부다. 주요 노선 대부분은 운행 횟수가 오히려 줄어버렸다. 이제 운행 간격이 10분 이하에 걸쳐있기라도 한 노선은 이제 900번(하지만 그것마저 무단 결행 때문에 간격이 20분으로...)밖에 없고, 수요가 적잖이 몰리는 노선에서도 20분 배차는 예삿일이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선 정리와 증차가 먼저 돼야 했다. 하지만 앞선 글에서 보다시피 시청은 손을 놨고, 오히려 배차가 적다고도 많다고도 할 수 없는 애매한 도심권 노선을 몇 개 늘렸다. 차량이 모자란 상황에서 만든 새로운 노선들은 배차 간격이 30분을 넘어간다. 교통 소외 지역을 연결한다는 의의가 있기는 한데, 대단지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에 운행 밀도가 낮은 노선이 과연 효용성이 있을까?

 

하여튼 시청은 기존 노선 배차 간격 축소 대신 노선 신설을 택했고, 그 결과 기존 노선과 신설 노선 모두 사이좋게 버스가 드문드문 오게 되었다.

 

기존 노선이라고 해서 지금도 사람이 이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시청은 2021년에 하루 평균 이용 인원 1위는 12번(7,036명), 2위는 14번(6,097명)라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애써 무시하며 배차 간격을 좁히지 않은 결과 12번의 6분 배차 전설은 아득히 멀어졌으며, 14번이 이대로 운행한다면 등굣길 두정역에서 버스를 놓치는 백석대생들은 더 많아질 것이다. 동서 순환 1번과 남북 순환 2/7번은 수요가 많음에도 한 대를 놓치면 20분 넘게 기다려야 한다.

 

2024 시내버스 개편안 주요 농촌/시외 노선 운행 횟수와 배차 간격 현황. 기존 노선, 새로 생겼거나 조정된 노선으로 나눠 운행 횟수가 가장 많은 순서대로 나열했다.(120번과 121번은 번호는 다르지만 같은 경로로 운행하는 노선이기 때문에 하나로 간주함. 반면 100번과 110번은 서로 다른 노선으로 간주함.)

 

늘어난 배차 간격 때문에 짜증나는 건 농촌 사람도 마찬가지다. 입장/성거 간선 버스 200번은 충분히 늘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안성과 천안역을 오가던 201번이 입장으로 단축되면서 남은 차량을 200번에 투입한 것이에 지나지 않는다. 200번과 201번이 코로나 대유행 이전에는 각 20분, 대유행 이후부터 개편 전까지는 각 22~25분 간격으로 운행하고 있어서 입장과 성거 사이에는 버스가 애초에 10분 간격으로 드나들고 있었다. 사실상 배차 간격이 늘어난 셈이다. 이건 무슨 조삼모사도 아니고...

 

목천, 북면, 병천 주민들은 급행 노선이 자주 다니게 되었으니 버스가 한층 편안해지기를 기대하겠지만, 오히려 실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400번(56회 → 46회)과 401번(18.5회 → 10회)에서 줄어든 운행 횟수는 급행 405번 운행 횟수와 맘먹고, 목천 신계리 수요를 일부 나눴던 380번 대와 390번 대가 독립기념관까지만 운행하면서 해당 버스 탑승객은 도심으로 가려면 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한다. 이렇게 되면 당장 사람들은 400번과 401번에 더욱 쏠리게 될 것이고, 405번과 815번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거기도 사이좋게 콩나물시루가 될 것이다.

 

시청은 이번 개편에서 지간선제 강화와 환승 활성화 등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정작 수요가 많은 주요 간선 노선 배차가 제대로 늘지 않으면서 환승 불편은 더 심해질 전망이다. 내 집 앞까지 오는 버스는 한 번 놓치면 20분 넘게 기다려야 오고, 다음 갈아탈 버스를 10분 넘게 기다리고 갈아탄 버스가 콩나물시루인 상황을 자꾸 겪게 되면 사람들이 누가 버스를 갈아타고 싶어 할까? 귀찮으니 자차를 타지.

 

 

등이 굽은 노선들

굴곡이 심한 노선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승객은 가고 싶은 목적지를 빠르게 가는 것을 원하지만 현실은 생각에도 없던 시티투어만 한다. 기사들도 직진 신호 받아서 속 시원하게 달리고 싶은데, 골목 구석구석을 신호 대기 받고 들어가느라 운행 한 번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늘어나니 답답하다.

 

이번 개편에서 경로가 바뀐 노선들. 일부 구간이 직선화되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굴곡은 해소되지 않았다. (자료 출처 = 천안시청)

 

몇몇 노선은 손을 보기는 했지만, 고친 정도가 미미해서 전반적으로는 여전히 굴곡이 심하다. 기종점 기준 최단 거리로 걸어가는 시간과 버스 운행 시간이 한 시간으로 비슷한 3번은 북부 3번과 남부 6번으로 쪼개졌다. 발상 자체는 좋은데, 여전히 그 쪼개진 노선에서도 굴곡이 심하다. 3번은 성성동 이후 구간에서 방면마다 길이 다르고, 백석동 구간은 계단처럼 이리 틀고 저리 트는 통에 어지럽기만 하다. 6번 선형은 그런대로 볼만 하지만, 문제는 배차 간격이...

 

11m짜리 버스로 좁디좁은 성정2동 행정복지센터와 서초등학교 골목길을 지나다닌 11번, 이제는 3번과 경로를 맞바꿈으로써 두정동에서 천안역까지는 그나마 빨리 다닐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U자로 휘어지면서 기종점 기준 걸어가는 시간이 버스 타는 것보다 빠른 그 특유의 선형은 여전하고, 그 긴 버스로 왕복 2차로 도로를 주행하는 경로가 세 군데 더 남아 있다. 21번은 번영로를 경유함으로써 신불당과 천안아산역을 더 빠르게 잇게 되었지만, 용의 도시 아니랄까봐 용곡동과 쌍용동, 불당동을 구불구불하게 잇는 선형은 여전하다.

 

이제 막 입주하기 시작한 풍세 한양수자인 아파트 주민들은 개편 초안이 나왔을 때 가장 반발이 컸다. 3,200세대에 달하는 초대형 단지지만, 초안에서는 최대 126분까지도 벌어지는 603번을 배정해 주었다. 당연히 민원이 빗발쳤고, 결국 이번에는 600번과 601번이 아파트를 경유하게 해 놨다.

 

그래서 전체 형상은 세로로 길게 뻗은 것에 꼬리 하나 달린 것으로 바뀌었는데, 이건 보기 안 좋다 이상의 의미가 있다. 3,200세대 주민들을 고작 32회 오가는 버스로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울뿐더러, 아파트를 경유하면서 기점에서 종점까지 총소요시간은 70분에 육박한다. 기사들은 장시간 운행에 지치고, 예전까지 버스를 이용했던 광덕/풍세 원주민들은 한 번 이동하는데 몇 분을 빼앗길 판이다. 시청이나 운수회사 딴에는 기존 노선 경유가 손쉬운 입주 아파트 교통 대책이었을지 몰라도, 나머지 다른 이해관계자 모두에게는 아쉬운 결정이다.

 

이번 개편에서 경로가 바뀌지 않은 노선들. 언뜻봐도 직선 구간이 별로 없고 빙빙 둘러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료 출처 = 천안시청)

 

선형이 바뀌지 않은 노선들은 여전히 보기만 해도 답답하다. 14번은 여전히 두정동과 백석동 구석구석을 구불구불 잇고 있다. 안 그래도 사람 많은 노선인데 승객 더 태우려고 빙빙 돌지 말고 두정역에서 두정도서관을 직선으로 가고, 백석동은 노태산로와 시청로를 달리면 안 되는 걸까?

 

천안아산역 주변을 한 바퀴 둘러치는 1번, 청당동과 터미널 사이를 구불구불 잇는 87번, 3번과 6번이 있음에도 여전히 신불당 ㅁ자 경유를 고수하는 90번, 두정역까지 가는데 굳이 터미널을 둘러서 노선 중간이 움푹 파인 듯한 20번 등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봐도 이걸 이렇게밖에 이을 수 없느냐는 생각이 드는 노선들이 많다.

 

 

터미널 삼각지대

버뮤다 삼각지대는 지나가는 배나 비행기가 사라진다는 괴담으로 유명하다. 천안에서도 버뮤다와 견줄 만한 곳이 있다면 아마 중앙시장 – 천안역 동부광장 – 터미널로 이어지는 ‘터미널 삼각지대’를 꼽을 수 있지 않을까? 그곳으로 많은 버스가 들어가서는 다른 동네로 빠져나갈 생각을 안 하니까.

 

종합터미널과 고속터미널 정류장에 정차하는 모든 버스 노선 수를 더했다. 기/종점은 터미널에서 출발하거나 도착하는 노선, 경유는 기/종점은 아니지만 터미널에 정차하는 노선을 의미한다.

 

개편 이후 터미널에 정차하는 버스 노선 수가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전체 노선의 절반 가까이가 터미널을 경유하거나 기종점으로 삼고, 터미널에 정차하는 시내 노선은 오히려 늘어버렸다. 누군가는 사람이 많이 몰리는 만큼 버스를 많이 투입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묻겠지만, 이것은 상상 이상으로 천안 교통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먼저, 터미널 앞 만남로 교통 정체를 시내버스가 부추긴다는 점이다. 천안 터미널은 주말에는 5분에 한 대씩 운행할 정도로 이용객이 많은 천안 – 서울경부 시외버스를 비롯해 전국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노선망을 갖췄고, 그 건물에는 백화점과 대형마트, 대형 서점, 영화관 등이 모여 있다. 신불당과 두정동 먹자골목이 자리를 잡은 요즘에도 신부동은 여전히 중심 상업지로서 위세가 굳건하다. 이때 시내버스는 터미널에서 사람을 잘도 많이 싣고 다니는데 오히려 교통 정체를 유도한다. 왜냐하면 도로가 시내버스 공급을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종합터미널 바로 앞 정류장은 상황이 심각하다. 도로 일부분을 택시 승강장으로 쓰고 있어 버스 정차 공간은 많아야 대여섯 대를 정차할 수 있는데, 터미널 기점 버스들이 출발 전까지 몇 분씩 대기하느라 버스가 정차할 수 있는 공간은 더욱 줄어든다. 때문에 혼잡 시간대나 주말만 되면 승객들은 도로 한 가운데에서 버스를 타고, 일반 차량은 오도 가도 못하게 되는 것이 일상이다.

 

흔한 주말 천안 터미널 앞 풍경.jpg

 

또 다른 하나는 버스 불균형 문제다. 이제 터미널 일대가 원도심이라고 불릴 정도로 천안 도심은 급속도로 팽창했고, 천안아산역이 생긴 이래로 고속철도 탑승객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신규 개발지나 시외 교통 수요가 몰리는 곳에 버스를 공급해 줘야 하는데, 터미널 경유 노선들이 정리되지 않으면서 필요한 곳에 버스가 적게 다니고 있다.

 

아래 표에 있는 정류장들은 별 볼일 없는 곳이 결코 아니다. 시청이 도시 행정의 중심이라는 건 두 말하면 잔소리요, 서울대정병원은 신불당에 있고, 두정도서관 앞에는 전국구 먹자골목이 있으며, 수도권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은 두정역에서 내리고, 청룡동행정복지센터 옆에는 법원/검찰청/세무서가 있으며, 쌍용동 이마트는 매출액으로 전국 순위권에 드는 대형마트다. (아니 이걸 내가 굳이 주절주절 이야기해야 되나?)

 

사람이 몰리는 마땅한 이유가 있는데도 이곳에는 버스가 별로 없고, 특히 농촌 주민들은 이곳들을 가려면 터미널에서 갈아타든지 아니면 중간에 내려서 걷든지 해야한다. (시청은 위치도 환상적이어서 농촌 주민은 시청 가려면 최소 한 시간은 잡아야 한다!) 그리고 이상한 점 하나. 천안역 서부광장은 같은 천안역이고 서부 주민들이 천안역을 방문할 때 동부광장보다 서부광장이 편리함에도 버스는 죄다 동부광장으로만 간다. 

 

터미널 삼각지대 혹은 터미널로 가는 경로에 자리 잡고 있지 않은 곳은 사람들이 많은 타는 정류장인데도 정차 노선 수가 10개를 넘기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밤에만 다니는 심야 노선과 하루에 한 번 다니는 통학 노선을 박박 긁어모아도!) 반면 밤만 되면 유령 정류장이 되는 삼도상가 정류장이나 온양나드리에는 시도 때도 없이 버스가 쌩쌩 지나다닌다. 서부 주민들은 이 모습을 보면 어떤 말을 할까? 아마 '이게 버스냐!'하지 않을까? 아 참고로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천 번은 외쳤고, 앞으로 천 번은 더 외쳐야 할 것 같다.

 

천안 시내 주요 정류장 정차 노선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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