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화통 터지는 2024년 천안 시내버스 개편안 유감] ①
확 뒤집을 줄 알았는데 돌아온 것은 덕지덕지 보완?
나아진 구석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실망이자 화다. 혁신할 것처럼 해놓고서 어정쩡한 보완책이 나왔으니까.
애초에 이렇게밖에 못 할 거였으면 시청은 이번 노선 개편에 상당히 공을 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교통 전문 기업에 용역을 맡겼고, 노선 초안을 공개한 뒤에는 시민 설명회를 여는 한편 누리집으로 의견도 들었다. 현재는 개편한다고 현수막도 이곳저곳에 걸고 버스정류장에 노선도를 덕지덕지 붙여 놨다. 그동안 진행한 과정들을 보면 노력과 돈이 무지막지 들었을 테다.
무엇보다도 이번 개편을 추진한 시내버스‘혁신’추진단은 천안시장이 대중교통 혁신 필요성을 크게 느껴서 만든 시장 직속 기구였다. 이 정도 돈과 노력을 들였으니 천안 버스가 확 뒤집히리라고 당연히 생각한 내가 바보였던 걸까?
이번 개편으로 우리 집 바로 앞까지 오는 버스는 오히려 배차가 줄어버렸다. 안 그래도 꽉꽉 찼던 아침 시간대 버스는 사람들로 더욱 미어터지게 생겼고, 밤에 버스를 타려면 30분 넘게 기다려야 한다. 25년 동안 용케 자차도 없이 농촌에서 살고 있는 나로서는 더욱 불편해진 시내버스를 애써 참고 타야 한다는 것이 진절머리가 난다.
이런 불편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꽉꽉 막히는 ‘왕복 10차선’ 번영로에서 버린 시간은 누가 보상할 것이며,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추위에 벌벌 떨며 기다린 시간은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이 열악한 대중교통이 사람에게만 해를 끼친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천안삼거리와 교통도시로 유명해졌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전국에서 대중교통 가장 후진 곳을 꼽을 때 천안을 꼽는다. 도시 브랜드를 암만 잘 만들고 청년 도시라고 홍보하면 뭐하는가 시청이 스스로 먹칠을 하고 있는데. 그리고 안 그래도 공장 많아서 공기도 안 좋은데 차에서 배기가스와 미세먼지는 좀 많이 나오는가. 무엇보다도 자가용들이 뿜어 대는 온실가스는 기후 재앙을 재촉할 뿐이고,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이라는 엄중한 목표를 방해한다.
마침 천안과 인접하면서 도시 규모와 성장세가 비슷한 세종, 청주, 평택은 천안과 비슷한 어려움에 부닥쳐도 여기보다 훨씬 진보한 조정안을 내놓았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티가 곳곳에서 드러나니 나는 그저 화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편은 이렇게 하는 것!
청주와 평택은 이미 노선 체계가 바뀌었고, 세종은 변화를 앞두고 있다. 다른 도시들의 개편을 살펴보면 변화가 극적이고 확실히 대중교통이 편리해졌다는 인상을 주는 데 반해 천안은 그렇지 않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었는가? 그걸 알아보려면 비교를 안 할 수가 없다. 가장 먼저 살펴볼 것은 ‘노선 수’다.
세종: (개편 전) 60개 → (개편 후) 72개 (▲12)
청주: 142개 → 98개 (▼35)
평택: 68개 → 37개 (▼29)
천안: 156개 → 148개 (▼8)
청주는 100개 이하로 노선을 줄였다. 일부 권역에만 개편을 추진한 평택은 반토막 내다시피 노선 수를 급격히 줄이다 보니 비판이 제법 거셌다. 세종은 늘긴 했지만, 애초에 지나치게 적었던 노선 수와 그동안 급격했던 인구 성장세와 교통 수요를 다 헤아리면 그렇게 많이 늘어난 것은 아니다.
왜 이렇게까지 노선 신설을 최소화하거나 무리할 정도로 노선을 없앴을까? 그것은 버스 운행 효율을 높이기 위함이다.
그동안 시내와 농촌이 함께 있는 도시들은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어느 시골구석에도 시내로 나갈 수 있는 버스를 다니도록 노선을 짰고, 그 버스들은 대부분 원도심을 지났다. 원도심에는 시청, 상점, 시외교통, 병원 등등 모든 것이 있었고, 시골 사람들은 그곳을 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구가 늘고 도심이 커진 오늘날에는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농촌과 원도심 인구는 점점 줄다 보니 승객 감소는 당연하다. 노선이 많아지다 보니 경로 중간 지점에서 탑승하는 승객이나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는 내가 타야 할(혹은 운행해야 할) 노선을 여럿 외어야 한다. 승객들은 번거로움에서 끝나지만, 기사들은 자칫 헷갈리면 잘못된 경로로 운행할 수도 있다. 또, 노선이 는 만큼 차량을 늘리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새로 시가지가 형성된 지역에는 버스를 이른 시일 내에 배차를 늘리기 어렵다.
그래서 각 도시는 농촌과 시내를 오가는 노선은 간선 노선 위주로 통폐합하고, 읍면 주요 정류장에는 간선 노선 ↔ 지선 버스/DRT를 원활히 갈아탈 수 있는 환승 정류장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남은 버스는 기존 버스의 배차 간격을 줄이거나 신규 개발 구역으로 가는 버스 신설에 활용된다.
천안이 아예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고속터미널 앞에서 출발해 직산읍 서부를 한 바퀴 돈 뒤 종합터미널 건너편에서 운행을 종료하는 노선 중 6개(141, 142, 144, 145, 150, 157)가 천안콜버스로 대체됐고, 북면으로 가는 380번대 노선과 목천 북부로 가는 390번대 노선은 각 지역에서 독립기념관까지만 가도록 줄였다. 그럼에도 중앙시장 - 천안역 - 천안터미널을 지나는 노선은 30개를 넘고, 천안터미널에 정차하는 노선은 절반에 육박한다.
이렇게 각 지자체가 노선 폐지 칼날을 휘두르는 동안 오히려 늘어난 버스도 있는데, 바로 ‘광역/급행 버스’다.
세종: 10개 → 15개 (▲5)
청주: 4개 → 5개 (▲1)
평택: 7개 → 8개 (▲1)
천안: 3개 → 3개 (-)
일반 버스와 달리 일부 정류장에만 정차하는 광역/급행 버스는 도시와 다른 도시, 혹은 도시 외곽과 도시 중심을 빠르게 잇는 수단이다. 수도권에서는 광역버스가 주요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고, 도시철도가 없는 세종은 땅 위의 지하철 BRT를 적극 활용해 도시 안팎을 빠르게 연결하면서 행복도시권이라는 고유한 도시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알면 천안의 조정안에는 아쉬움이 크다. 5번 배차 간격 축소와 병천 급행 개편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405번은 이전 급행보다 정차 정류장이 늘면서 시내 내부 도로를 거쳐 쾌속성이 다소 떨어졌고, 815번은 하루 운행 횟수가 다섯 번에 지나지 않는 데다가 정차 정류장이 지나치게 적어 많은 사람이 이용하기 어려워 보인다. 시외를 오가는 광역급행버스라고는 하루에 열 번도 안 다니는 아산시 면허 2000번이 전부다.
201번 단축은 오히려 도시 간 연계를 포기한 모습도 보인다. 안성과 도심으로 오가던 201번은 이번 개편에서 입장으로 단축돼서 안성에서 천안을 시내버스로 오가려면 입장에서 환승을 한 번 해야 한다. 201번을 좌석버스로 전환하면서 급행 운행을 도입하는 동시에 종점을 천안아산역으로 연장했다면 안성과 천안을 유기적으로 이으면서, 입장과 성거 주민에게 시내로 오고 가는 급행 교통수단을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의지의 차이
마지막으로 비교할 것은 어쩌면 이번 개편이 혁신이 아닌 보완이 되어야 했던 이유를 설명할 핵심 요소다. 그것은 바로 ‘차량’ 대수다. 다른 지자체들은 버스 운행을 늘린 만큼 차를 늘렸지만, 천안은 예외였다.
세종: 309대 → 399대 (▲90)
청주: 483대 → 550대 (▲67)
평택: 238대 → 322대 (▲84)
천안: 362대 → 362대 (-)
다른 도시에서 많게는 세 자리에 닿을 것 같은 숫자로 차량을 늘릴 때, 천안은 한 대도 증차하지 않았다. 더욱이 천안시 통계에 따르면 시내버스 인가 대수는 2021년 기준 413대다. 운수 회사가 차량 고장이나 정비를 대비하고자 정규 노선을 운행하지 않는 예비 차를 남겨둔다는 것을 고려하면 실제 운행 대수는 더 적을 것이다. 인가 대수를 못 채울 거면 인가는 도대체 왜 내준 건가?
증차는 자존심 싸움하려고 혹은 양을 불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증차가 서비스 질 개선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다음 표에서 알 수 있다.
한 대당 인구/면적은 버스 한 대가 평균적으로 얼마만큼의 인구와 면적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숫자가 작을수록 차량 한 대가 떠맡는 인구와 면적이 줄기 때문에 좋다. 반면 한 노선당 차량은 반대로 숫자가 높을수록 좋다. 평균적으로 노선 하나에 몇 대의 차량이 배치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므로 숫자가 높으면 그만큼 한 노선에 여러 대를 투입할 수 있다.
계산을 해보면 천안은 네 도시 중에 2개 부문 꼴찌, 1개 부문 3위에 머무르고 있어 어떤 부분에서도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청주와 천안은 같은 용역사에서 노선 개편을 추진했는데도 수치상으로 많은 차이가 나타난다.
당국은 민영제다, 인력 수급이 원활치 않다, 공영 차고지가 없다, 예산이 없다 등등 증차가 어려운 이유를 설명하기는 했다. 하지만, 다른 도시라고 사정이 녹록한 건 전혀 아니다. 지방공기업이 버스를 운행하는 세종조차도 인력 수급이 원활치 않을 정도로 버스 기사는 다른 도시도 구하기 어렵다. 평택은 천안처럼 현재까지 일반 노선에는 순수 민영제고 공영 차고지가 없다.
그런데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타 도시들은 몇십 대를 증차한다고 나섰고, 세종과 청주는 시장이 기자회견에서 이 사실을 직접 밝혔다. 시장들이 괜히 허세를 부렸던 걸까? 아니다. 증차는 배차 간격을 줄이거나 신규 노선을 만들려면 반드시 할 수밖에 없다. 대중교통 이용 활성화와 시민 편익 증진이라는 목표가 확실했기 때문에 과감하게 투자한 것이다.
천안은 그걸 애써 무시하고 개편을 시도했고, 다른 도시와 서비스 수준을 비교했을 때 차이가 더욱 벌어지게 되었다. 획기적 투자 의지가 없는 상태에서 추진된 이번 개편은 결과적으로 아랫돌 빼서 윗돌 괸 꼴이 되었다.
지금까지 다른 도시와 비교를 통해 넓은 시야에서 천안의 현실을 살펴봤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개편 체계 속을 살펴보면서 개편안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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