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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지대는 언제든 환영이야!

여의도

by 드파랑 2024. 2. 1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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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맘에 들지도, 이길 것 같지도 않지만 어쨌든

 

여당이 된 국민의힘이 계보를 이어받는 보수계 정당, 이재명의 민주당이 뿌리내린 민주계 정당. 식상하다 못해 자연의 이치 같기도 한 이 양당 구도는 도무지 깨질 생각이 없다. 하긴 역사와 정통성, 강력한 지역 기반, 양당에 우호적인 선거제 등이 온 우주의 힘이 모이는데 오죽하겠는가?

 

이걸 뒤집으면 그만큼 양당 외 정치세력이 여의도에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얘기인데, 총선이 가까워지면서 제3지대라는 이름을 단 꿈틀거림들이 조금씩 눈에 띄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윤석열이나 이재명이나 대안이 될 수 없다며 반기를 든 금태섭, 류호정, 양향자, 이준석, 이낙연이 모여 개혁신당에 모였다.

 

누구는 왜 제3지대를 하는지 모르겠고, 누구는 혓바닥 놀리는 게 심상치 않고, 누구는 누가 싫어서 뛰쳐나온 게 역력해 보이지만, 나는 일단 결과가 어떻든 제3지대라는 이름을 단 움직임들을 환영할 생각이다. 왜냐면…. 요즘 정치가 통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정치는 2016년이 참 재미있었지

요즘 정치는 참 쉽다. 대통령과 민주당은 서로를 향해 욕 만해도 지지자들로부터 호응을 얻는다. 민주당이 통과가 안 될 것 같지만 꼭 필요했던 법안들을 머릿수로 밀어붙여서 통과시키면 대통령이 재의 요구권이라 쓰고 거부권이라 읽는 그것을 행사하면 된다. 정치인들은 어느 때보다도 정치를 참 쉽게 하는데, 가만히 그들을 구경하는 나 같은 사람들은 재미가 없다.

 

내가 살면서 정치가 가장 재밌었던 해를 꼽으라면 2016년을 주저 없이 고를 것이다. 이유는 단연 촛불항쟁 때문이다.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하나 된 목소리로 무능한 데다 부도덕한 정권의 퇴진을 외치고 적폐 청산을 요구했던 기억, 그리고 여론에 정치인들과 법관들이 호응해 준 것을 잊을 수가 없다. 정치로만 보면 이 해가 1987년 이후 가장 역동적이지 않았을까.

 

정권을 쓰러뜨린 데에는 촛불항쟁이 가장 컸지만, 2016년 시민들의 선택도 한몫을 했다. 견고하게 1당을 차지할 줄 알았던 새누리당이 더불어민주당에 1당 자리는 물론 과반을 빼앗기고,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안철수 돌풍을 일으키며 30석을 차지했다. 사람들은 이것을 단순히 야권 승리로 해석했는데, 이것은 박근혜 탄핵이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에서 또 다른 나비의 날갯짓이 될 줄 모르고 한 소리였다.

 

탄핵이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되었던 것은 소통과 협상 때문이었다. 야당들은 탄핵 가결을 위해 서로 긴밀하게 협상하고,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을 설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탄핵 찬성 의원 명단을 공개하며 압박했다. 이런 환경에서 정치인들은 보스나 당에 휘둘리지 않고 국민 여론을 소신껏 따를 수 있었다. 물론 소통이 없었다면, 국회는 탄핵안 상정은커녕 해산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뒤에 열린 대선은 그것이 갑작스럽고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치르게 된 선거였음에도 마치 잔칫집 같았다. 시민들이 정당한 저항권을 행사함으로써 국민주권을 실현했다는 것도 있었지만, 모처럼 다양한 후보들이 나와 자기 색깔을 보여줬기 때문이기도 하다.

 

친구가 겪은 비극을 복수하고자 칼을 간 사람, 부서진 집에서 실언과 사이다 발언을 쏟아내며 흩어진 지지자들을 모으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람, 새 정치 바람을 몰고 대선에 드디어 첫발을 내디딘 사람, 소신을 펼친 죄로 대통령에 의해 내쳐졌던 사람, 진보정당 한 길만 묵묵히 걸은 사람…. 나름대로 출마자들에게는 사연이 있었고 자신의 소신도 주저 없이 내보였다.

 

그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가치와 정책을 확고하게 보여줬다. 비록 사람들은 승자만을 기억했지만, 2위와 3위 후보가 득표율 20% 이상을 얻고, 군소정당 후보 둘이서 5%씩이나 득표했다는 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 선거 다음 날 강의실에서 교수가 이번 선거에 대해 평하라고 했을 때 나는 무지개떡 같은 선거였다고 말했다. 평소에 무지개떡을 즐겨 먹지 않는데, 희한하게 그날은 무지개떡이라는 말이 퍼뜩 떠올랐다. 아마 여러 색깔이 겹겹이 포근하게 어우러지는 그 모습이 보기 좋아서 그랬던 걸까.

 

 

가치와 행동으로 보여줘라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무지개떡은 금방 쉬어버렸다. 대선 이후 제3지대 정당에 관한 관심은 사그라들고, 민주당은 선거 3연승 괴력을 선보였으며, 안철수와 유승민이 고육지책으로 꺼낸 합당은 오히려 악수가 되었다. (그런데 한 당에서 또 만났네? 정치는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지난 대선은 축제가 아니라 전쟁터가 되었고, 제3정당의 빈자리가 유독 커 보였다.

 

초 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지금 개혁신당에도 바른미래당에서 보였던 불길한 요소가 있다. 앞서 언급한 이름들을 다시 보시라. 금태섭, 류호정, 양향자, 이준석, 이낙연. 여러분은 이들이 한 정당에서 어우러질 수 있으리라 보는가? 각자 살아온 길도 다르고, 정치적 성향도 다르다. 특히 이준석이 확 튄다. 이낙연과 이준석의 지지층이 다르다는 문제는 류호정과 이준석의 만남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둘은 여성 문제에서 합의점을 찾을 수 있기는 한 걸까?

 

안철수의 국민의당과 유승민의 바른정당이 합당한 바른미래당은 이념적 갈등과 지지율 정체에 시달렸고, 합당 주축 세력이었던 안철수와 유승민 결국 2020년 창당한 국민의당과 새로운보수당으로 갈라선다. 한편, 남은 바른미래당 세력은 호남계 신당(대안신당, 민주평화당)과 합당해 민생당이 되었으나, 현재 민생당은 원외정당으로 전락했다.

 

이들이 이렇게 모인 이유는 ‘윤석열도 싫고 이재명도 싫다!’ 이거 하나뿐이다. 가치와 이념 중심이 아니라 어떤 인물이 싫어서 모였다는 것을 사람들은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지금 이들에게는 클린스만 감독한테 찾을 수 없었던 빌드업이 어느 정당보다 중요하고, 이른 시일 내에 해내야 한다.

 

반윤, 반이라는 공통 분모 외에 다른 부분을 찾고, 그것을 중심으로 정당의 가치와 철학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의견 차이로 당이 갈라질 확률이 줄어든다. 당명을 이준석이 만든 개혁신당으로 하기로 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개혁을 당의 중심 가치로 내세울 것으로 보이는데, 이름만 내세우지 말고 그것을 이룰 정책과 공약을 국민에게 선보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잔소리를 한마디 더 하자면, 통합도 중심 가치로 삼았으면 좋겠다. 당신들이 통합을 외쳐야 할 이유는 정말 많다. 여론 양극화가 어느 때보다 심하고, 양당을 뛰쳐나온 이유가 보스가 통합은커녕 다 해 먹는다는 생각에 분해서 뛰쳐나간 거고, 이렇게 모인 사람들은 서로 상당히 이질적이라 작은 균열에도 당이 갈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쨌든 운명 공동체가 된 사람들을 향하는 내부 총질이나 애써 모은 지지층도 떨어뜨리는 차별 발언은 삼가야 할 것이다. 특히 이준석 당신은 잘 새겨들어야 한다. 여성 징병, 노인 무임 폐지 같이 소모적 논란만 만들고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는 발언은 공식 석상에서는 입 밖에도 내밀지 마라. 정 입이 간지러우면 메모장 켜던가. (난 저번에 말했다. 덕질 전에 사람 먼저 챙기라고!)

 

 

제3지대, 진보정당에 좋은 거겠지?

진보정당, 특히 지금은 녹색정의당이 된 정의당을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제3지대가 이렇게 관심을 받는 것은 뼈아픈 일이다. 정의당도 한때는 제3지대 정당에서 뿜어내는 신선한 이미지가 있었다. 진보정당의 뿌리 민주노동당은 2004년 총선에서 13석을 얻었고, 2020년 총선에서 정의당은 9.67%라는 사상 최고 정당 득표율을 기록한다. 하지만 현재 정의당은 대중에게 낡은 정당, 나약한 정당으로 인식되고 있다.

 

여기에 지지부진함을 참지 못한 사람들은 제3지대로 떠나버렸다. 조성주가 중심이 된 제3의 권력과 박원석이 주도한 대안신당당원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당내에서 당료나 정치인으로서 잔뼈가 굵다. 안 그래도 인력도 없고 세력이 약한데 다른 세력에게 그것을 빼앗기니 제3지대가 정의당에 미치는 손해는 이만저만한 것이 아닌 듯하다.

 

하지만, 이것은 잠깐 손해일 뿐 길게 보면 정의당에 이득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정의당이 지지부진한 이유 중 하나는 사표 심리다. 다들 표를 던질 때 내 표가 의미가 있기를 바라지 의미 없는 표가 되고 싶지는 않지 않은가? 둘 중 하나가 당선될 게 내 눈에도 선한 상황이라면 그 생각은 더욱 심해진다. (나는 진보정당 후보에 표를 던질 때 그 후보가 선거비용 반액이라도 보전받기를 바랄 뿐이다.)

 

제3지대가 대중에게 양당을 대체할 세력으로서 인정받는다면 사표 심리는 조금이라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지역구에서 후보 몇 명이 나와 치열하게 경쟁한다면 그 마음은 더욱 사그라질 것이다. 이것은 추측이 아니다. 최근 선거에서 증명되는데, 정의당이 처참하게 패했던 2022년 대선과 지선, 정의당이 상승세를 이어가던 2016년 총선부터 2020년 총선에서 구도가 어땠는지를 생각해 보면 내 말이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치열한 경쟁과 다당 구도는 사실 정의당뿐만 아니라 시민 모두에게 이득이다. 여러 후보가 나와 치열하게 경쟁하면 유권자는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사람에게 투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소신과 정책을 알리는 데 집중해야 하고, 이런 상황에서 흑색선전이나 흠집 내기 선거전은 쓸모가 없다.

 

그래서 이번 선거가 재밌는지 재미없는지는 제3지대 정당들이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것이 지지하는 정당은 다르지만, 일단은 제3지대 정당을 응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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