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10월 29일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광화문

by 드파랑 2022. 11. 6. 15:41

본문

내게 핼러윈 데이는 그저 남의 일이었고, 언제가 그날인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건 당연했다. 하지만 이제는 핼러윈 데이가 언제인지 또렷하게 기억할 것 같다.

일요일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단톡방에서 온 알림들을 보고 믿을 수 없었던 나는 인터넷으로 TV로 쏟아져 내린 안타까운 소식들을 듣고서야 상황을 파악했다. 내가 아주 깊고 평안히 잠든 시각에 누구는 생사를 헤매고 있었다니. 참으로 모순이었다.

사실, 이 순간에도 죽음은 계속되고 있고 죽음에 귀천은 없다. 다만 우리가 이번 죽음을 더욱 참담하게 느끼는 이유는 규모도 규모지만 조금씩 기억 속에서 흐릿해지던 그날 때문일 테다.

그날 오전 나는 창고 한구석에서 문서를 정리하고 있었다. 갑자기 연합뉴스가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알림을 보냈는데 나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몇 분 안 돼서 사람들이 구조되고 있다는 알림은 내가 그걸 더욱 신경 쓰지 않게 했다.

하지만 전원 구조 알림을 채 지우기도 전에 갑자기 스마트폰에 또 다른 알림들이 쌓였다. 다 구조됐다고 믿었던, 아니면 그런 일이 일어난 줄 모른 채 일에 열중했던 사람들로 조용했던 사무실은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TV로 심각성을 접한 사람들은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혼란과 무책임, 오보라는 소용돌이 속에 우리 사회는 슬픔과 무기력함에 잠기고 말았다.

그 심정을 담아 사람들은 이 사건을 ‘세월호 참사’로 부르게 되었고, 내가 겪은 일이 아닌데도 그날 모습은 또렷하게 박제되었다.

참사라는 단어가 다시는 쓰이는 일이 없으리라 굳게 믿었는데, 서울 한복판에서 그런 일이 생길 줄 몰랐는데, 믿음과 상식이 처참히 깨지고 말았다. 그것도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마침 그 현장에서 고통받던 사람 중에는 그 나이대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어째서 그때랑 지금이랑 비슷한 게 많은지 모르겠다. 불법, 무책임, 지침의 부재, 상황을 뒤늦게 파악한 지휘부, 한계가 있었고 최대한 혼신의 힘을 쏟았음에도 더 구하지 못했다며 자신을 자책하는 이들. (아마 이런 흐름이라면 해경 해체했듯이 조만간 경찰청/경찰국도 해체하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8년 전과 달리 ‘잊지 말자.’는 이야기는 듣기 어렵다. 서서히 그날의 상처가 아물던 중에 이런 일이 또 터졌고, 그때 아픔과 뒤섞여 지금 더 아프니까.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이 10월 29일을 4월 16일처럼 영영 잊을 수 없을 것이고, 애도 기간이 끝나도 한동안 안타까운 마음은 쉬이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일단은 추도하자며 국가가 정한 그 짧은 일주일 동안 논란이 많았다. 검정 띠에 ‘근조(謹弔)’를 적지 않았는지 같은 개인에 의사에 따라 결정할 수 있는 너무나도 사소한 논란은 가볍게 지나칠 수 있다고 쳐도, ‘국가 애도 기간이 필요 없다.’, ‘유가족과 부상자에게 세금을 왜 줘야 하냐.’는 매정함과 현실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는 논쟁도 있었다.

그리고 추도의 의미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 한 사람들도 많았다. 애먼 희생자와 현장 경찰관/소방관에게 욕을 쏟는 사람들. 아무리 정제된 언어로 봐도 참담한 이야기를 굳이 영상으로 찍어서 소셜미디어로 퍼 올린 사람들. 객쩍은 소리를 기사로 내뱉는 사람들.

물론 그중에서도 최악은 조용히 애도나 하라 해놓고 정작 그 입을 가만히 두지 못한 높으신 분들이었다.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라거나 ‘핼러윈은 축제가 아니라 현상.’이라거나 기자들이 매섭게 따져 묻는 자리에 기어이 갑자기 분위기 싸해지는 농담을 한다거나 등등.

이런 소모적인 논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런 일이 왜 일어났고, 누가 책임을 져야 하고,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어떻게 바꿔나갈지를 말해야 한다. 생각해보면 사망사고 터질 때마다 되풀이되는 이야기다.

그래서 기원한다. 희생자 여러분에게 평온한 안식을, 부상자 여러분에게 빠른 쾌유를, 희생자와 부상자 주변인에게 마음의 상처가 빨리 낫기를. 국가는 책임과 체계라는 단어를 아로새기길, 그로 인해 우리 모두 또다시 이런 나쁜 기억이 남지 않기를.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