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이 곳에 관한 사람들의 기억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서 배우러 갔을 것이고, 누군가는 보상 휴가를 준다고 하니까 가는 곳이었을 것이다. 독립기념관이 자리 잡은 읍에 사는 나로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내게 독립기념관에 간다는 것은 굉장히 설레는 일이었다. 독립의 열망을 느낄 수 있어서? 그건 아니고. 신나는 코끼리 열차를 탈 수 있었고, 비린내 풀풀 나는 먹이로 잉어를 모이게 할 수 있었으며, 잔디밭에서 술래잡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여기에 외식으로 아우내 시장 가서 순대국밥 먹어 주면 그 날은 정말 복 받은 날이었다. 놀이공원 가기 부담스러웠던 우리 가족에게는 이만한 놀이터도 없었다.
학교에 다닐 때는 어릴 때만큼 자주 찾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멀어지지는 않았다. 방문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봉사활동, 소풍, 졸업 사진 촬영 등이 그것이다. 나이도 먹었고 목적을 두고 간만큼 어릴 때보다 더 많은 것이 보였다. 또래 탈북민과 독립기념관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독립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하고, 여기저기 잘 꾸며진 꽃밭을 보며 다채로움과 아름다움을 어렴풋이 느끼기도 했고, 선조의 잘못을 직시하는 용기 있는 또래 일본 학생들도 볼 수 있었다.
독립기념관의 구석구석을 알게 된 것은 어른이 되고 나서였다. 심심해서 때로는 머리를 식히고 싶어서 버스 타고 홀로 독립기념관에 갔다. 이때 돼서야 비로소 전시관에 있는 전시물과 역사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가 전시관이 좁다고 느낀 나는 걸어 다니면서 독립기념관 내 여러 시설들을 둘러보았는데,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서쪽 언덕 너머에 인상적인 공간을 발견하기도 했다. 강압 통치가 부질없는 것임을 느낄 수 있는 조선총독부 철거부재 전시공원, 통일했다면 온 지구를 돌아다녔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하고 묵묵히 녹슬어가고 있는 기관차가 있는 밀레니엄 숲이 그것이다.
시간이 흐르며 독립기념관에 대한 기억은 변했지만, 독립기념관이 내가 사는 동네의 자랑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광복절 경축식에 독립기념관이 나오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친구에게 ‘독립기념관 근처에서 살아.’ 하면 목천이라는 동네를 잘 모르는 친구들도 쉽게 알게 하면서 넌지시 자랑도 할 수 있었다. 천안에 정을 도통 못 붙이는 우리 아버지는 이게 있어서 목천이 살기 좋은 동네라고 인정했다.
사실 천안 목천에 자리 잡은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다. 목천에서는 임시정부 수반을 역임한 이동녕 선생이, 병천에서는 천안을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인 유관순 열사와 독립운동가와 4.3 항쟁 양민 학살 주동자라는 명암이 동시에 있는 조병옥이 태어나고 자랐다. 여기에 독립기념관 터는 박정희 정권 시절 행정 수도 이전 최종 후보지 중 한 곳인 천원지구로 꼽혔을 정도로 교통과 지세가 좋다. 어쩌면 이 땅은 독립기념관을 위해 있는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독립기념관은 천안을 상징하게 되었고, 천안시는 독립기념관을 연결고리 삼아 독립운동 역사와 자원을 보존하고 그것을 미래에도 이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2023년에 K리그2에 처음 참가하는 천안FC는 로고에 겨레의 탑을 새겼다. 대중문화라는 뭔가 안 어울리는 걸 엮어서 두 차례나 열린 K-컬쳐 박람회는 성황을 이루고 있다.
내게는 어린 시절부터 추억을 쌓아오고, 천안에 산다는 자부심을 만들 수 있었고, 역사의식을 키운 공간 독립기념관.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눈엣가시였던 모양인지, 자기들 주장으로는 새롭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전혀 신선하지 않은 뉴라이트라는 사람들을 독립기념관에 불러 모아서 논란을 애써 일으키고 있다.
그래서 이번 논란이 더욱 화도 나고 서럽기도 하지만, 이상한 사람들을 앉힌다고 겨레의 탑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독립기념관을 짓는 데에는 전 국민의 자발적인 모금이 크게 이바지했고, 많은 사람이 독립기념관에 찾아서는 배움과 휴식을 즐기고 간다. 그 덕분인지 관장이 서울에 출장 간다는 이유로 취소된 광복절 경축식은 시민들의 의지에 힘입어 천안시청 주관으로 열렸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독립기념관을 지키고 있으니 그걸로 그나마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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