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엉망진창 와진창 충청 인권

광화문

by 드파랑 2023. 12. 31. 10:04

본문

인권은 변하지 않았다, 이상한 정치인들이 망쳐놓았을 뿐

 

인권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릴 수 있고, 누려야만 하는 권리다.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책과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충남 인권조례는 지역정부 차원에서 인권 보장을 위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인권선언 이행과 인권보호 및 증진 사업, 인권위원회와 인권센터 설치 ‧ 운영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제정 이후로 보수 기독교계는 줄곧 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한다고 비난해왔다. 하지만 인권조례에는 성적 지향과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선언할 뿐 어디에도 동성애를 조장하는 내용은 없었고, 동성애를 종교적 이유로 금지해야한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왜곡된 형태로 표출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4월 3일, 충청남도의회는 충청남도청이 재의 요구한 ‘충남 도민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충남 인권조례) 폐지 조례안’을 가결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로 인권조례를 제정한 광역자치단체 16곳 중 충남이 최초로 폐지한 것이다. 보수 기독교계를 의식해 과반 의석을 차지한 자유한국당은 인권조례 폐지를 강행했다. 모순되게도 2012년 5월에 인권조례 제정을 주도한 정당은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자유선진당과 새누리당이었다. 

 

대학 강의 과제로 제출한 이 글이 새삼스레 떠오른 건 충남 인권조례와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졸업한지 4년이 지나 어느덧 2020년대 한복판에 있는 지금 아직도 인권조례를 없애니 마니로 실랑이라니. 

 

만들면 사라지고, 만들면 사라지고

2018년에 사라졌던 인권 조례는 그해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도의회 과반수를 차지하면서 다시 제정되었는데,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도의회를 장악한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은 그것을 없애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조례 폐지에 항상 앞장서는 보수 기독교 시민단체들은 이번에는 주민 투표 청구라는 이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두 조례를 폐지하고자 들썩였다. 그들은 길거리로 나와 인권 조례에 대한 온갖 흑색선전을 벌이며 도민들에게 폐지 서명을 받아냈고, 결국 폐지 청구가 성사되었다. 이에 진짜 시민단체에서 대법원에서 조례 폐지의 적합성을 가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그걸 받아들였다. 하지만 국민의힘 소속 도의원들은 지체되는 시간을 참을 수 없었던지 학생인권조례 폐지안만을 발의한 뒤 며칠 전 본회의에 통과시켰다. 정말 환장의 짝꿍 납셨네.

또 하나 달라진 것은 도지사의 태도다. 김지철 교육감은 그때나 지금이나 자리를 지키고 있고, 그때나 지금이나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반대했으니 할 말이 없다. 2018년 인권 조례가 폐지될 당시에는 도지사가 재의를 요구했으나 자유한국당이 재의안 마저 가결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사라졌다. 그에 반해 인권 조례와 직접적 관련이 있고 임기 2년째에 접어드는 김태흠 도지사는 인권 조례 폐지에 별다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금서가!

김태흠 도지사는 인권 조례에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안에서는 뚜렷하게 목소리를 낸 적이 있다. 바로 금서 논란이다.

충남도청은 7월부터 도청이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이 소장한 일부 성교육, 성평등, 인권 관련 서적에 열람 제한을 걸었다. 도서관마다 적게는 몇 권, 많게는 수십 권이 포함되었다. 이런 일이 벌어진 데에는 단연 인권 조례 폐지에 앞장섰던 그 자칭 시민단체들 공이 크다. 집요하게 도내 공공 도서관에다가 그런 서적을 퇴출하라고 전화를 해대며 공무원들을 괴롭혀댔고, 도지사는 여성가족부 지정 나다움 어린이책을 콕 집어 그 책들을 열람 제한할 것을 주문했다.

조기 성애화, 동성애 조장... 분명 한국어로 썼는데 이해가 안 가는 말들로 이유를 내세워 책을 못 읽게 하는 건 백 번 그렇다 치더라도, 자칫 이번 조치가 검열을 공식화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금서 논란은 언론 출판의 자유라는 또 다른 측면의 인권을 침해할 수도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그래서 국가인권위원회가 반인권적 처사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도지사는 그것은 권고일 뿐이라며 따를 의사가 없음을 밝혔는데.... 정말 환장하겄네.

'금서' 중 하나로 꼽힌 《Girls' Talk : 사춘기라면서 정작 말해 주지 않는 것들》 표지. 불온한 이미지(?)와 달리 실제 책 표지는 평범하고, 수익금 일부는 십대 여성 건강권 증진을 목적으로 기부도 한다. (자료 출처 = 교보문고, 사진을 클릭하면 해당 책 판매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호모포비아 손아귀에 들어간 인권센터 결국 사망

며칠 뒤면 2024년 새해가 밝아옴과 동시에 대전광역시 인권센터는 문을 닫게 된다. 7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역사를 이어온 이 기구가 한 순간에 문을 닫게 된 기나긴 사연을 줄이면 다음과 같다.

시민단체에 인권센터를 맡겼던 대전시는 돌연 올 1월에 한국정직운동본부라는 기관에 새로 인권센터를 맡겼다. 이 기관이 도대체 뭐하는 기관이냐고? 아니나 다를까 '기독교' 시민단체였다. 개인의 자유권을 인권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 당당하게 주장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며,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라 치켜세우는 그런 단체 말이다. 결국 고양이한테 생선 가게를 맡긴 꼴이다.

인권에 적대적인 기관이 인권센터를 운영하는 것이 맞냐는 논란부터 시작해서 그 시민단체가 인권센터 운영을 수탁받은 뒤로 인권센터는 별다른 활동을 보이지 않는 등 2023년 대전 인권센터는 논란을 몰고 다녔다. 시청은 이런 문제를 큰 핑계로 삼고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와 중복된다는 사유를 하나 덧붙여 인권센터 문을 닫겠다고 나섰다. 어째 세월호 승객을 제대로 구출 못했다며 해경 해체를 지른 어떤 정치인의 모습이 아른거리는데...

2023년 12월 31일에 종료된다던 대전광역시 인권센터 누리집은 30일에 이미 닫혀있었다.

 

???: 인권은 잘 모르겠고, 권력은 잡고 싶고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충청권 광역단체장을 모두 장악한지 1년이 지나고 있는 시점에 인권조례 폐지, 금서, 인권센터 폐쇄 등 인권을 퇴보시키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는 한데, 나는 이런 일이 다 국힘 혹은 윤석열 때문에 벌어졌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대전이 없앤다는 인권센터를 세종은 새로 열었고, 민주주의를 그렇게 찾으며 나를 포함해 적잖은 사람을 홀렸던 그 충남의 아들은 비서 성폭력으로 무고한 동료와 도민을 배신했다. 

이렇게 인권 얘기만 들어도 길길이 날 뛰는 사람들은 인권이 무슨 급진적인 것으로 여기나 본데 천만에! 이제 인권은 더이상 전위적이지 않다. 전세 사기를 당한 피해자나 강제 수용으로 땅을 잃게 생긴 소유주 같이 재산상 피해를 우려하는 사람들도 인권을 내세우며 대책을 호소한다. 흉악범 혹은 부패 정치인들은 인권을 내세우며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면서 최대한 유리한 환경에서 재판을 받고 형을 덜 살려고 한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인권은 사회적 소수자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머리띠 둘러매고 광장에 나서야지만 찾을 수 있는 건 더더욱 아니다.

이렇게 누구나 인권을 찾게 되기까지에는 수많은 희생이 있었다. 민주주의 혁명으로 유토피아를 꿈꿨던 우리 인류는 제국주의와 전체주의라는 거대한 오판,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해 치러야 했던 참담한 희생을 겪으며 세계인권선언이라는 장엄한 반성문을 쓰기 이른다. 그 선언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국제 사회에서는 다양한 인권 국제법이 만들어졌고, 인권 감수성도 높아졌다. 선언문 쓰기 몇 달 전에야 제국주의의 침탈에서 벗어나 근대 정부를 스스로 세운 우리나라도 동족상잔의 비극, 독재, 시민 학살, 민주화운동을 겪으며 인권을 쟁취했다.

우리 인류와 우리나라 시민들은 인권을 찾고자 많은 희생을 치렀고, 그렇게 발전해 온 인권은 한 사람의 힘만으로 없앨 수 없다. 그런데 이걸 모르고 인권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경기를 일으키고 곧잘 색깔론을 펼치는 정치인이 너무 많다. 그들은 대개 인권을 표장사 거리로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그렇게 어찌저찌해서 권력을 잡아서 높은 자리에 있기는 한데, 난 왜 그들이 벌거벗은 임금님마냥 행동하고 다니는 걸로 밖에 안 보일까.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