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소함을 지켜 더 큰 이득과 권력을 누리려는 어떤 의사들에게
일이 너무 고되고 위험해서, 일한 만큼 대가를 주지 않아서, 회사 구조조정이나 매각에 반대하기 위해서, 노동자나 특정 산업에 불리한 정부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서, 다른 파업 노동자와 연대하기 위해서…
파업이 일어나는 이유는 참 다양하지만, 정치적 파업을 제외하고 보면 노조는 대개 임금 인상이나 근무시간 축소, 작업장 노동 환경 개선 등을 파업을 끝내기 위한 협상 조건으로 내건다.
인력 확대는 단골 협상 조건 중 하나다. 자본가나 주주에게 인건비는 될 수 있으면 줄여야 하는 요소고, 그것을 줄이기 위해서 기업은 노동자에게 어떻게 하면 적게 주면서 많이 일을 시킬지 고민한다. 그것이 심해지면 노동 강도는 세지고 노동자들은 결국 파업을 고민한다. 아니면 커피를 마시면서 코피 터질 때까지 일을 강제로 하던가 하하하… 아니 그런데, 여기서 구구절절하게 쓰는 게 손 아플 정도로 너무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주장이, 전국 상위 1% 수재들만 모인다는 의사들에게는 아닌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노동 강도가 원래부터 빡세서 노동 강도를 줄이려고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정부에 맞서 파업을 한다는, 평범한 사람들 상식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떳떳하게 할 수 없지 않겠는가?
물론 1년 뒤부터 당장 정원이 2,000명이 는다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 들기는 하고, 정부가 아무런 노력 없이 정원만 늘린다면 그건 그것대로 의사들에게 피해를 강요하는 일이기는 하다. 그래서 협의를 통해 시기를 조절하거나 필수 진료의 수가를 더 늘리는 정책을 확대할 수도 있다. 그런데 대한의사협회는 증원이 '오진'이라며 증원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물론, 망언을 일삼으며 생명을 인질 삼은 집단 행동을 합리화한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뭔가 다른 꿍꿍이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의사들은 이번 사태 이전에도 의사 정원을 어떻게든 늘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4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의사 정원을 500명 정도 늘리려고 했으나 강력한 반발에 코로나 19 대유행으로 유야무야 됐다. 그래서 2024년 현재 전국 의과대학 입학 정원은 3,058명이다. 왜 3,000명이나 3,100명이 아닌 어중간 숫자로 떨어진 걸까?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말이 지금은 당연하지만, 1990년대까지는 병원이 약을 처방할 뿐만 아니라 약을 지을 수도 있었다. 의사들은 처방과 조제를 분리하는 정책에 강하게 반발했고, 결국 2000년에 의사협회가 사상 처음으로 집단 휴진에 들어갔다. 의사협회 간부가 처벌받는 끝에 의약분업은 강행되었지만, 의사들은 계속 항의했다.
정부는 기세 좋게 정책을 추진했지만, 의사 눈치를 아예 안 볼 수는 없는 모양이었나 보다. 의사 반발을 누그러뜨릴 방안을 모색하다 찾은 것이 바로 의대 정원 축소였다. 의사들에게는 나름대로 적절한 거래였다. 해마다 새로 나오는 의사 수가 줄어들어야 기존 의사들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의사협회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의과 대학 정원을 3,500명에서 3,058명으로 10% 넘게 감축하기로 합의했고, 실행되었다.
이때 의대 정원을 감축한 건 정부의 크나큰 실책이었다. 대의적으로는 사회 구성원 간 합의를 통해 결정해야 할 면허 공급량을 이해 당사자들의 협상 거래 수단으로 전락시켰다는 문제가 있다. 현실적으로는 합의한 지 몇 년이 지나고서 의사 인력 부족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대두되었다.
2012년 연세대 의료 · 복지연구소는 ‘적정 의사인력 및 전문분야별 전공의 수급 추계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에 가면 국내 의사가 3만 4,000명~16만 명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보고서를 의뢰한 보건복지부는 이런 이유로 의사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지만, 의사는 지금껏 늘지 못했다. 이후 몇몇 대학에서 의사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따졌고, 한결같이 미래에는 의사가 부족해질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타당한 이유가 있음에도 의사협회는 ‘한국 의사 수가 공급 과잉 상태’라는 소리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오히려 의대 정원을 줄여야 한다고 큰소리쳤다. 지방이나 일부 기피과(흉부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등)에서 의사가 부족해지는 문제는 수가를 올려주기만 한다면 다 해결된다고 장담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토록 타령해댔던 의사가 넘쳐난다는 주장은 현실이 되었는가? 2009년, 의사협회는 국내 의사 인력이 공급 과잉 상태라고 주장하면서, 10년 뒤 의사가 OECD 평균을 웃도는 수준이 되리라 예측했다. 2007년 OECD 통계에 따르면 인구 1,000명 당 의사 수는 OECD 평균이 3.1명이었고, 한국은 1.7명으로 터키 다음 뒤에서 두 번째였다.
오늘날은 어떤가? 한국 의사 수는 인구 1,000명 당 2.4명으로, OECD 평균인 3.5명에 여전히 못 미치며, 또다시 콜롬비아 다음으로 뒤에서 2위를 차지하고 말았다. 지금 지방 병원, 공공의료, 의사가 기피하는 진료 과에서는 의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적게는 3억, 많게는 5억을 준다고 약속해도 말이다.
더욱이 이런 반발은 다른 나라 사례와 비교하면 더욱 어처구니없다. 이미 여러 기사에서 다른 선진국들은 고령화를 대비해 의사수를 늘려왔고,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물론 의사들도 증원에 찬성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수와 관련된 고사성어를 떠올리라면 다다익선과 과유불급이 생각난다. 두 말을 나란히 놓고 보자. 얼핏 보면 이 쌍은 서로 엇갈린 주장을 하지만, 교집합은 있다. 모자람을 긍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종이 탄생한 이래, 인간은 항상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 나타나는 문제에 부딪혔고, 이 사태를 제때 해결하지 못하면 많은 사람이 죽었다. 인간 사회는 절대적인 생산량을 늘리거나 한 사람이 독점한 것을 여럿이 나눠 가질 수 있는 규칙을 만들면서 모자람이 불러오는 위기를 벗어나고자 노력했다.
인류 역사상 이만큼 풍요로운 적이 없었다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모자람을 호소하는 소리가 들린다. 서울에는 2,000병상 넘는 병원이 속속 생기고, 강남에는 얼핏 보면 뷰티샵으로 착각할 만한 병원이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의사 선생님 얼굴 보기가 어려워, 큰 병이 들거나 애를 낳으려면 근처 대도시 병원이나 서울 큰 병원을 찾아 몇십, 몇백 킬로미터를 헤맨다.
이렇게 마땅히 늘려야 할 머릿수를 늘리지 못해서 생기는 피해는 ‘우리’가 고스란히 받는다. 돈과 권력이 한 사람에게 쏠렸을 때 나타나는 폐해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의사들은 의료진 부족으로 인한 환자의 피해를 전제로 돈을 더 벌겠다는 심보를 대놓고 드러내고 있다. 그 폐해를 타파하려면 사람을 늘리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독자들께 감히 충고드린다. 사람을 늘려서는 안 된다는 말을 온전히 믿지 마시라. 그 목소리에는 자신이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지 않으려는 소리 없는 아우성도 섞여 있음을 명심하시라.
※ 위 글은 2020년 9월 13일에 팀 블로그 '업데이트 후 종료'에 올린 <머릿수 정치학>을 재구성했습니다.
천안 사람들은 독립기념관에서 벌어지는 논란이 더욱 슬프다 (0) | 2024.08.15 |
---|---|
엉망진창 와진창 충청 인권 (0) | 2023.12.31 |
청년이라는 이름을 달고 하는 일들이 의미가 있으려면 (0) | 2023.02.16 |
10월 29일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0) | 2022.11.06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