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지자체 통합 찬성론자가 이번 통합에 반대하는 이유

민주당의 허니문 선거로써 무난하게, 그러나 중앙당이 짠 장기판에 따라 출마할 중앙 유력 정치인들의 소식으로 시끄러울 줄 알았던 이번 지방선거. 그냥저냥 흘러갈 것 같던 선거가 모처럼 지방에서 불거진 논쟁으로 시끄럽다.
지방 소멸에 맞서 메가시티를 구축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여러 지방에서 간헐적으로 나오던 광역자치단체 통합론이 전국적인 의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돌연 대전-충남 통합을 지지한다는 말과 함께, 통합한 지역에 4년 20조 원을 지원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공언과 지방선거에서 통합 단체장을 뽑자는 제안을 내놓은 지 두 달 지난 지금, 해당 지역뿐만 아니라 광주-전남,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 등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통합에 대한 논의가 쏟아지고 있고, 국회에서는 특별법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중차대한 사안에 대한 논의 과정은 어딘지 삐걱거리는 모양새다. 통합에 별생각 없거나 반대했던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대통령 말이 떨어지게 특별법을 제정했다. 광주-전남은 이때 통합 못 하면 특혜를 받을 수 없다는 공포에 사로잡혀서인지 합의를 휘뚜루마뚜루 해내는 모양새고, 대전-충남 통합을 밀어붙였던 국민의힘 소속 광역단체장과 광역의원들은 막상 통합한다고 하니 특례가 적다며 통합에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러니 통합을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 무엇보다도 지방선거 반년 전을 앞둔 시점에서 나온 대통령의 그 한마디 때문에 일이 일사천리 되는 것이 불안하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자처하는 지방자치제하에서 지역 내 의제를 추진할 때 가장 중요한 주체는 지역 주민이다. 하지만, 하향식 속도전 속에 주민을 향한 정보 제공이나 지역사회 내 깊이 있는 논의는 찾아볼 수 없다. 이재명은 정부를 출범시키면서 정부 명칭을 국민주권정부로 정했지만, 정작 이번 사안에 주민주권은 없는 모양이다.
행정 통합은 정치인들이 후딱 합의를 이뤄낸다고, 위에서 통합론을 내리꽂는다고 완성되는 게 아니다. 마산-창원-진해, 청주-청원 같은 기초자치단체 간 통합은 몇십 년 동안 줄다리기 끝에 이뤄졌고, 삼여 통합(여수시-여천시-여천군)과 통합 창원시 출범 이후에도 해당 지역에서는 소지역주의가 아직도 그치지 않은 상황이며, 전주-완주, 목포-무안-신안은 아직 설만 난무한다. 그런데 기초단체보다 훨씬 단위가 큰 광역단체 사이 통합이 몇 달만 논의를 끝낼 수 있는 문제이기는 한 걸까?
그리고 숙의 없이 특별법을 만들면서 불거지는 각종 문제도 통합에 회의감을 들게 한다. 특별법에 담긴 특례들에서 지역 균형발전을 논리로 각종 규제를 피해 가려는 속셈이 보인다. 문제는 그에 대한 이득은 소수 지역 유지와 정치인만 누리게 될 것이고, 부작용은 지역 주민 모두가 떠안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발의한 대구-경북 통합 특별법에서는 글로벌미래특구를 통합 지방정부가 지정할 수 있게 하면서 최저임금법과 근로기준법을 무력화할 수 있는 법안을 내놓았다. 안 그래도 대구에서는 최저임금을 준수하지 않는 사업장이 가장 많을 정도로 저임금이 고착돼서 청년들이 떠나간다고 들었다. 그 대구 다음으로 최저임금이 잘 안 지켜지는 도시이자 자칭타칭 민주도시임을 자부하는 광주-전남의 통합 법안에는 외국인투자기업에 근로기준법 일부 조항 적용을 배제하는 내용이 담겼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청년을 떠나보내고 싶었으면 저런 법을 내놨을까.

또, 특별법에는 국비가 일정 금액 이상 투입되는 사업에서는 반드시 거쳐야 해서 재정 낭비를 막도록 하는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고, 난개발 억제를 위한 대표적 환경 규제인 개발제한구역과 환경타당성평가를 지방정부가 대폭 완화할 수 있도록 한 특례를 두기도 했다. 지역 균형발전을 핑계로 각종 난개발과 환경파괴를 펼치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주민들은 이런 소식을 전혀 알지 못한다. 지역 내에서 자체적으로 통합을 추진했을 때 지방 관청에서는 시군을 돌며 주민 설명회라는 것을 열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정보는 통합으로 얻을 열매나 장밋빛 전망만 들었을 뿐, 그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듣거나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통합에서 주민 의견 수렴 절차는 국회에서 열린 단 한 번의 입법공청회가 전부였고, 주민투표 절차는 생략됐다. 지역에서 자체 추진했던 때보다 정보가 더 부족한 상황에서 주민들은 통합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그로 인해 뭐가 변하는지, 그로 인해 얻을 부작용은 무엇인지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얻지도 못한 채 통합으로 인해 불거진 각종 문제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할 실정이다.
내가 통합에 찬성하는 이유는 광역시가 독점한 자원을 같은 역사와 정체성을 공유하는 광역권 안에서 폭넓게 활용해야 수도권에 맞설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울산을 제외한, 통합 논의가 나오는 광역시들은 통합 대상으로 꼽히는 도의 도청 소재지였다. 도청 소재지라는 특성은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도내 다른 도시보다 앞서게 했고, 그 이점은 광역권 내 주민들을 도시로 끌어당겼다. 그렇게 도시 집적 효과로 거대해진 지방 대도시들은 광역시가 된 뒤로 도시 안에서 생긴 자원을 도시 안에서만 누리게 됐고, 그걸 본 나머지 대도시들은 광역시를 꿈꾸게 되었다. 반면, 광역시가 된 도시를 떠나보낸 도에서는 지역 중심지 상실, 인구 감소, 자원 배분 소외를 겪으며 성장이 지체됐다. 그렇게 지방이 갈라지는 사이 수도권 집중은 갈수록 심해졌고, 현재는 사이좋게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지방들이 뭉쳐 통합된 행정구역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원론적으로 찬성하지만, 지금 밀어붙이기 식 통합에는 반대한다. 통합에 관해 글을 쓰려고 마음 먹을 때만해도 지적하고 싶은 점이 너무 많았다. 전국적인 차원에서는 전국이 다 특별시가 되는 문제, 통합되는 광역시 내의 자치구를 그대로 놔두고 통합을 진행해 도시 정체성은 사라지면서 광역시의 기득권 해소가 완전하지 않은 문제, 특례를 두고 지방 간 경쟁이 심화되는 문제 등을 지적할 수 있고, 대전-충남에서는 통합에 참여하지 않는 충북과의 관계 설정이나 특별자치단체인 충청광역연합의 역할 문제 등이 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이 통합 논의에 소외돼 있다는 사실 앞에서 내가 지적하려했던 논쟁들은 가벼운 문제일 뿐이었다.
정치권은 지금 지역민이 통합을 원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위해 통합해야 하는지를 따져야 한다. 그런 통합이 아니라면, 해당 지역에 뿌리내리고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상처만 줘서 그들을 수도권으로 떠나보내는, 지방선거 새판 짜기식 통합에 긍정적 효과가 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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