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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거리 일지

광화문

by 드파랑 2025. 4. 1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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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거리는 목적지 있는 흐름으로 가득하지만, 지난 120여 일 동안만큼은 돌덩이 같은 분노들이 거리를 가로 막았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광명정대하게 세상을 비출 응원봉과 하나 된 목소리를 꺼내들었고, 그에 힘입어 발휘된 강력한 주문은 잡음을 물리쳤다.

 

이겼다는 기쁨도 잠시, 일상을 살다 보면 혼란스러웠던 시간은 흐려지고, 어느샌가 우리는 또 다른 혼란과 싸움을 마주해야 할지 모른다. 그때를 잊지 않으려 나는 일지를 남긴다.

시위에서 쓴 피켓들. 맨 위부터 1월 집회, 2월 15일 집회, 3월 25일 집회에서 받았다.

 

12월 7일

계엄령이 떨어지고 나서 열린 첫 주말 집회. 전국에 유명하다는 거리는 분노가 이끈 발걸음으로 장사진을 이뤘다. 천안에서 경부선 터미널 가는 시외버스는 2~3분 간격으로 배차했는데도 금방 매진됐고, 고속터미널역에는 10년 넘게 이용하면서 보지 못한 긴 줄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해 질 녘에야 시위 현장에 도착했다. 어둠 속에서 목소리는 참 우렁찼고, 빛들은 휘황찬란했다. 그런 거대한 목소리를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은 못 들은 체했고, 탄핵안은 투표 불성립으로 폐기돼서, 허탈함은 쉬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나와 친구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쓸쓸히 부르며 자리를 박찼다.

9호선 고속터미널역 지하 4층. 여의도 집회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의 행렬은 지하5층 승강장을 넘어 지하 4층까지 이어졌고, 주말 보통 열차는 평일 급행열차마냥 꽉꽉 들어찼다.

 

1월 4일, 11일

새해 첫날이라는 설렘으로 가득 차야 했던 그날. 하지만 우리는 그 설렘을 온전히 즐길 수 없었고, 춥기는 또 오질라게 추워서 달달 떨어야 했다. 그날들의 소감은 지난 글을 참고하시길.

2025.01.24 - [광화문] - 서울에 가지 않고 만남로 길바닥에 앉은 이유

 

1월 21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난동이 벌어지고 난 이틀 뒤. 법원 주변 곳곳은 아직도 말끔히 사라지지 않은 흔적들이 남아 있었는데, 정작 현장에서는 참담함을 생생하게 느끼기 어려웠다. 깨진 유리창은 보이지 않았고, 그 주변을 겹겹이 둘러찬 차벽과 경찰관들은 법원 정문 통행을 막아 세웠다. 차의 장막에 둘러싸인 법원 건물은 아무 일 없다는 척 숨죽이고 있었다. 

서울서부지법 가는 길에 있는 어떤 초등학교. 길거리에는 폭동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서울서부지법 정문 앞 네거리. 법원과 검찰 청사는 차벽으로 둘러싸였고, 담벼락 안팎으로는 경찰들이 서성거렸다. 청사 앞 길은 신분이 증명되거나 법원에 볼 일이 있는 사람들만 드나들 수 있었다.

 

 

2월 15일

역시 시위는 여의도보다 광화문에서 하는 것이 제격이다. 탁 트인 공간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모습을 보니 시위하는 맛이 났다.

 

이날 나는 예전 집회보다 다채로운 경험을 했다. 형형색색 응원봉 못지않게 다양했던 깃발들,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무료 푸드트럭. 그리고 무엇보다도 설렜던 것(?)은 노조와 시민단체에서 준 굿즈였다. 여성의 날 ․ 전장연 스티커, 마트노조와 보건의료노조에서 준 탄핵 배지도 인상 깊었지만, 화물연대에서 빨간 머리띠를 줬을 때는 특히 감격스러웠다. 길고 긴 수련 끝에 태권도 검은띠를 받은 느낌이랄까. 그래도 노조원은 아니라서 차마 머리에 쓰지는 못하고 가방에 달고 다녔다. 머리띠는 앞으로도 다른 시위 나갈 때마다 잘 쓸 계획이다.

 

본 시위가 끝나고 시위대는 경복궁 동십자각에서 명동까지 행진했다. 가는 내내 많은 사람이 동조해 줘서 뿌듯했다. 행진 종착지에는 세종호텔 불법 해고에 항의하고자 고공농성을 벌이는 해직 노동자가 있었다. 찬 바람이 어지간히 부는 데도 그의 목소리는 당찼다. 천 일을 넘긴 세종호텔 문제는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부디 빠른 해결이 되기를 바란다.

시위 와중에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제법 보였다. 나로서는 흥미로운 풍경이었는데 관광객들은 어떤 심정이었을지 궁금하다.

 

행진 종착지였던 세종호텔 앞. 지하차도 차단기 위에서 세종호텔 노조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었고, 시위대는 그를 응원했다.

 

원래 갖고 있던 세월호 리본 빼고는 다 그날 현장에서 받은 굿즈들이다.

 

3월 25일

병원 진료를 마치자마자 간 남태령에는 트랙터를 싣고 올라가려는 전봉준 투쟁단, 투쟁단을 막으려는 경찰, 투쟁단을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는 사람들이 뒤엉켜 있었고 차량은 오도 가도 못했다.

 

내가 간 곳 중에서는 분위기가 가장 격앙되어 있었다. 올라가는 길을 맞이한 극우 시위대는 투쟁단 사람들한테 좌파(그런데 이 양반들은 왜 좌파를 욕처럼 쓸까?), 이재명(안 찍었는데?), 중국인(댁이 흔드는 태극기는 누가 만들었을까?) 등의 단어로 어그로를 무진히도 끌려고 했다. 

 

취재차 나온 친구를 찾던 중에 그들 무리를 두세 번 정도 지나쳤는데, 나랑 또래 같은 사람이 투쟁단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밀치고 다녔다. 내가 밀리는 건 그럭저럭 참았으나, 아줌마를 밀치는 걸 보고는 화가 나서 내가 그를 저 멀리 밀쳐버렸다. 나보다 먼저 현장에 있었던 친구 말로는 이것보다 상황 정리가 더 안 됐다고 했다. 나는 지나가는 길에 애꿎은(?) 경찰에게 다소 고조된 목소리로 동선 분리 좀 해달라고 했다.

 

경찰과 시위대가 서로 양보 없이 버티고 있는 윗동네도 그랬다. 경찰의 작은 움직임에도 만들어진 인간띠는 방패와 수도 없이 부딪혔다. 도와달라는 소리가 들리면 아무 생각 없이 달려갔고, ‘물러나’를 수도 없이 외쳤다. 시위 현장을 떠나는 한 사람은 지나가는 소리로 시위 지도부가 관리를 못한다는 불평을 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격앙됐던 건 헌재가 탄핵 심판을 빨리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재판관이 5:3으로 갈렸다느니, 각하가 될 거라니, 결론이 재판관이 떠나기 직전에도 안 날 거라니 등등 온갖 뜬소문은 정국을 불안하게 했다. 명확한 결정으로 반가운 소식을 전한 지금에서는 다 허튼소리로 드러났기는 했지만, 그래도 결정을 좀 더 빨리해 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충돌하는 시위대와 경찰. 이날 남태령에서는 경찰의 작은 움직임에도 인간띠가 만들어져 서로 수도 없이 부딪혔다 .

 

상경 집회에 참여한 트랙터.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아마 트랙터 실물을 처음 보는 모양이었다.

 

4월 5일

그동안의 혼란을 씻어버리려는 듯이 비가 봄비치고는 제법 많이 내렸다. 그럼에도 이름값 못하는 사랑제일교회는 하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시청 앞을 막았다. 원래 존재 자체가 해로운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무슨 락페스티벌 열린 것마냥 사회자며 연설자며 하나같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서 더 짜증 났고, 홍수환 아저씨가 탄핵은 영어로 impeachment인데 파면이 웬 말이냐는 소리를 내뱉었을 때는 실소가 나왔다.

 

광화문 앞은 비가 와서인지 어느 때보다 한산했다. 그럼에도 푸드트럭에서는 무료 간식을 열심히 나눠줬고, 자원봉사자들은 우비를 입은 채 비를 맞아가며 현장 관리를 하고 있었다. 내가 할 일 없는 백수였음에도 여러 핑계로 시위에 다섯 번만 참여했을 때, 그들은 자신의 본업이 있었음에도 (또는 제쳐두고) 시위 현장을 가꿨다.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잠깐이라도 비 맞지 말라고 우산을 씌워주는 것밖에 없었다.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탄핵 결정이 내려진 다음 날에 그동안의 활동을 마무리하는 자리라서 그랬는지 사람들은 화기애애했다. 정치인들은 조금씩 초점이 다르기는 했지만, 시민들이 있었기에 탄핵할 수 있었다고 공을 돌렸다. 자칫 지루한 시간이 될 수 있지만, 사회민주당 대표 한창민이 외친 ‘야 기분 좋다!’와 정의당 대표 권영국의 손화살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전자는 ‘그걸 외쳐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후자는 아재가 젊은이들이랑 통하려는 노력이 가상해 보였다.)

 

소회를 말하는 집회 사회자들은 환호를 받았고, 그들은 집회를 이끈 사람들을 연단으로 올리며 박수를 받게 했다. 그리고 그들은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사람들이 신나 하는 와중에 나는 비 젖는 게 두려워서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들이 내심 부러웠다.

 

비가 와서인지 행진 없이 마무리된 시위에서는 ‘풍경’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음악에 맞춰 사람들은 하나둘씩 시위장을 떠나고 있었다. 노래는 가사에다가 부르는 꼬마의 목소리 때문인지 참 포근하게 들렸다. 그렇게 비일상적인 순간의 한 장이 끝나고 있었다.

전광훈이 이끄는 극우 집회. 연단에서 내뿜는 날카로운 목소리는 우퍼 스피커를 타고 광화문과 종로에서 또렷이 들렸다.

 

광화문 앞 시위대. 빗속에서도 깃발 든 사람들은 우비를 쓰며 깃발을 세차게 흔들었다.

 

시위가 끝난 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시위 현장을 바라본 모습. 안 그래도 주말에는 광화문에 사람이 별로 없는데, 통행이 막혀서 인지 길이 더욱 한산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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