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공간에도 볕 들 날 있다] ④ 안성선
대전, 동대구, 부산, 해운대, 진주, 광주, 목포, 여수, 제천, 익산, 용산, 서울.... KTX보다는 느리지만 이 많은 행선지들을 갈 수 있게 해주는 천안역. 여기서 나는 한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천안의 윗동네이자 안성맞춤의 고장인 안성 가는 열차 말이다. 그러면 누군가는 이렇게 답하겠지. 잠깐... 안성? 안성은 철도가 없는 도시인데?
한때 안성에도 열차가 다닌 적이 있었다. 1925년 11월 1일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가 개통한 경기선은 천안과 안성을 잇는 철도였다. 일제는 경기 남부 지역에서 나오는 쌀을 항구로 원활하게 반출하고 연선을 개발하려는 목적으로 개설을 허가했고, 1927년에는 이천 장호원까지 연장됐다. 하지만, 막상 짓고 나니 수요가 신통치 않았던 모양이다. 1944년 불요불급선으로 지정해 안성부터 장호원까지 선로를 뜯고서는 거기서 나온 쇳덩이를 무기로 활용했다. 어떻게 보면 이 기찻길은 이러나 저러나 일본 제국주의의 도구로만 악용됐던 셈이다.
해방 이후에 국유화된 선로는 안성선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지만, 쓸모는 더욱 줄었다. 특히, 원주까지 연장하려는 시도가 무산되면서 안성선의 운명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대도시권이나 항만, 공단이 밀집한 지역 위주로 고속도로를 까는 것이 우선이었던 시절에 지방과 지방을 잇는 재래식 철도에 투자할 여력이 없었다. 어정쩡하게 남은 안성선은 찾는 사람이 점점 줄어 1985년에 여객 열차 운영이 완전 중단되었고, 1989년 1월 1일에는 폐선되고 만다. 그렇게 올해는 안성선이 폐지된 지 37년째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열차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걸으며 그 꽁무니를 쫓는 게 빠를 것 같다.

흔적을 찾는 긴 여정은 천안축구센터에서 시작한다. 축구센터 앞길은 일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길이 이렇게 난 건 안성선 폐선 부지를 도로로 재활용했기 때문이다. 천안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는 축구센터 남쪽에서 반 바퀴 크게 돌고서 경부선 위를 가로질러 안성으로 향하는 구조였다. 이 길은 폐선 뒤로도 경부선과 장항선을 연결하는 용도로 활용됐으나 그마저도 수도권전철 연장을 계기로 새 선로를 만들면서 쓸모가 없어졌다. 그렇게 기찻길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길이 되었고, 기찻길에 둘러싸여 한동안 논밭으로 남았던 땅은 휴식과 스트레스 해소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길은 축구센터를 지나서 단국대로 이어진다. 단대1로와 천호지 주차장, 그리고 단대 캠퍼스 일부 도로가 옛날에는 모두 철길이었다. 만약 안성선이 살아있고 천호지 언저리에 역이 있었다면 단국대생은 지금처럼 11번 버스에 낑낑대며 타지 않아도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단대 캠퍼스를 지나 단대병원을 빠져나오면 경부고속도로 ‘안서철육교’를 만난다. 철도는 사라진지 오래지만, 안서동의 철도를 지나는 다리라는 뜻을 품은 이름은 그대로다.

빛을 쫓아 걸으면 성거읍이다. 기찻길은 망향로라 불리는 23번 지방도와 나란히 달리다가 기점에서 떠난 이후 처음으로 정류장을 만난다. 성거읍 석교리에 있어서 석교역이라는 이름을 단 역은 주변에는 망향의 동산과 자연마을이 있어서 이용객이 아주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역 위치에는 주택 공사가 한창이라 옛 모습을 찾기 어렵고, 철길 터에는 원룸이 일렬로 줄지어 있다.

석교역을 지난 철도는 만남로와 경부고속도로 사이 논 한 가운데로 달려가다가 성거역을 만난다. 읍의 이름을 내건 데다가, 걸어서 10분 거리에는 성거읍 행정복지센터를 비롯한 읍내가 있어서 열차가 다녔을 때는 꽤 붐볐을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이 역 바로 옆에는 송남1리 마을은 평범한 시골마을이다. 보통 역전하면 번듯한 번화가가 떠오르지만, 안성선 역들은 농촌에서 흔히 볼법한 풍경이 펼쳐진다. 만약 지금도 열차가 다녔다면 낭만을 찾는 젊은이들이 간이역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을 텐데...
성거역 이후로는 안성선이 있던 길을 따라서 걷기가 어렵다. 하천을 건너는 교량은 대부분 철거되었고, 공장, 논밭, 주택 부지로 바뀐 곳이 많아서 선으로 쭉 이어져야 할 길이 군데군데 끊겨 있다. 지목에 철도용지를 뜻하는 ‘철’이 찍한 토지대장이나 옛날 항공사진을 보지 않는 한 그곳이 기차가 지났던 땅이었다고는 상상할 수가 없다.

직선이 아닌 길을 돌고 돌아 헤맨 끝에 간신히 기차가 지났던 길을 따라 잡을 즈음에는 입장역에 이른다. 입장역은 입장시장 옆에 바로 붙어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았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일대는 성당과 아파트가 들어서 있어 그곳에 역이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아마 안성선이 있었더라면 입장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는 입장천을 건너 유유히 안성으로 향했을 것이다. 나도 그 길을 따라 안성까지 가려고 한 순간, 내 몸이 내 발을 잡았다. 알고보니 걸은 거리만 약 16km에 반나절 동안 걷다보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걷기에는 부담스러운 거리를 안성선이 이어줬다는 생각에 대견하면서도 이제는 그만 쫓을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천안과 안성을 잇는 201번 버스가 내 눈앞에 어른거렸고, 나는 시내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비록 쓸모가 다 해 없어져버리고, 오늘날에는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안성선. 그러나 그것의 존재 의미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안성은 이 철길이 없어진 뒤로 철도가 지나지 않는 지역이 되어버렸다. 그 아쉬움이 커서인지 안성시청은 역 터와 안성천에 안성선을 소개하는 시설을 세웠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점은 이 길에서 열차로 설렘을 싣고 나를 방법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풍경, 생각이나 사연이 다른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는 설렘, 열차에서 먹어야 더 맛있는 호두과자 혹은 사이다와 계란 등등. 열차 여행은 자가용에서 느낄 수 없는 낭만과 추억을 준다. 계획대로 원주까지 연장됐더라면 천안 사람들은 강원도를 보다 쉽게 오가면서도 열차 여행에 관한 또 다른 추억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아쉽지만 이제 더 이상 안성 가는 열차는 오지 않는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그 아쉬움을 남아 있는 흔적들을 보면서 달랠 수밖에 없다. 그 길로 열차가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 이 글은 필자가 기고한 ≪2024 천안문화독립도시 아카이빙≫을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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