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 배우가 다른 여성에게 AV에 데뷔하라는 말을 했을 때 시청자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것도 성기가 노출되는 성인물의 제작과 유통이 금지된, 그 국가의 규제를 받는 구독자 170만 명을 자랑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옆 사람들이 제지는커녕 그 말을 강조한 것까지, 제작진들이 편집 없이 내보냈다면 말이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면서 선을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오이 소라를 프로그램에 출연시키고 팬 사인회를 연다고 tvN(당시는 신생 채널로서 시청자를 끌어들이고자 온갖 이상하거나 특이한 기획을 내놓았다.)이 나서자 그것 자체로 큰 논란이 된 기억도 떠올리니 지금 이렇게 AV 배우가 한국 콘텐츠에서 큰 논란 없이 게스트로 나오는 모습은 참으로 기묘하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 일 이전부터 많은 AV 배우가 한국에서 활동하기는 했다. 유튜브에 한국 여행기를 올리고, 한국 팬들과 한국어로 소통하는 채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때로는 팬 사인회도 알게 모르게 열리고 있다. 그래서 시미켄이 심익현이라는 이름을 얻고, 미카미 유아가 허니팝콘이라는 그룹으로 ‘K-아이돌’을 따라 한다고 덤볐던 것 아니겠는가. (아, 하마사키 마오는 졸업 작품 수준 영화 같은 성인물에 출연했었지.) 이쯤 되면 AV 배우들은 한국에서 AV 촬영만 안 할 뿐 셀럽으로서 삶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노출 없이도 관심을 받으니 오히려 이득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이런 흐름에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좀 꺼림칙하지만, 한국을 좋아한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한국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AV가 아닌 다른 경로로 활동하겠다는데 어쩌겠냐라는 태도였다. 그런데 이 사달을 접하고나서 돌아보니 내 관점은 참으로 순진해 빠졌던 것이었다.
내가 그 판단이 더더욱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이유는 사람들의 반응 때문이다. 사석에서 이런 농담을 나눠도 성희롱으로 느낄 여지가 충분한 판에, 불편하신 분들 눈치 본다느니 예능에서 치는 농담인데 엄격하게 보지 말라는 반박이 나오며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을 몰아붙이는 걸 보면 말이다.
얼마 전 논란이 된 AV 페스티벌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초등학교 근처 전시장에서 열릴 뻔하다가 사람들 반발로 파주, 서울 한강공원, 강남 등을 전전하면서 끝내 무산되었던 그것. AV 자체가 불법인 현실과 부적절한 위치 선정, 몰상식한 주최 측 발언, 관광비자로 영리 활동 등 행사 추진 과정에 여러 잡음과 문제가 있었음에도, 그것이 열리지 않은 불만은 정치인이 한마디 거들게 할 정도로 제법 거셌다.
성인물이 컴퓨터에서 머물지 않고 현실 세계에서 모습을 보이려는 시도는 계속해서 생길 것이다. 아무리 warning 방패가 첨단 기술을 도입한다 한들 계속 생겨나는 포르노 사이트와 VPN 앞에서는 무장해제 상태다. 연애와 결혼이 필수가 아닌 시대가 되어버린 요즘, 사람들은 모자람을 채울 공간으로 더더욱 인터넷을 찾는다. 우리는 화면 속 그들과 더 자주 깊게 가까워질 수 있고, 성인물은 현실에서도 발가벗은 모습으로 시청자를 찾아가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일상에 파고든 성인물이 아무리 성적 판타지에 빠지게 할지라도 엄혹한 현실은 가릴 수 없다. 그것은 AV 발상지라는, 그래서 으레 ‘성진국’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일본에서 또렷이 볼 수 있다.
2년 전 통과된 ‘AV 피해 구제법(AV 신법)’은 제작사에 AV 출연과 유통 과정에 숙려 기간(계약부터 촬영까지 1개월, 촬영부터 유통까지 4개월)을 둘 의무를 지웠고, 출연자에게 나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영상이 공개된 뒤 1년 동안 계약을 해지할 권리를 줬다. 이것 말고도 제작자와 제작사에는 배우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의무가 생겼는데, 이 조치를 하나라도 취하지 않으면 법원은 그들을 최대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이 법을 만든 직접적 계기는 성인 나이 하향(만 20세 → 만 18세)이었다. 청년들이 보다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해서 늙어가는 일본 경제와 사회를 살리고자 추진한 민법 개정안은 대의와 세계적 추세를 따졌을 때 흠잡을 구석이 전혀 없다. 문제는 이 법이 열여덟 열아홉 청소년들이 AV 촬영 계약할 가능성도 열어버렸다는 점이다.
이 소식에 놀란 일본 국회는 부랴부랴 피해 구제법을 만들어냈는데, 반대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 법이 성매매를 합법화 한다.'와 '이 법 때문에 AV 배우 생존권이 무너진다.'는 정반대의 의견이 충돌했다. 그래도 변화에 둔감하다는 나라에서 법이 두 달 만에 통과됐고, 청소년 출연 금지가 목적이었던 법은 AV 배우 모두로 적용 범위가 늘었다. 제정 과정이 이토록 전격적이었던 데에는 성인물이 그동안 인권의 사각지대였고, 피해 회복에 대해 광범위하고 빠른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에 일본 사회와 정치권이 공감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나는 왠지 AV 업계 총매출이 일본 국내 총생산의 10% 수준에 이르렀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까지 있었던 수많은 논란을 두고 봤을 때 늦어도 너무 늦은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배우 동의 없이 성기가 가려지지 않은 영상이 유통되는 일, 촬영을 이유로 제작사가 마약 투여 및 집단 성폭행 등을 자행해 배우가 중상을 입는 일, 집단 성병 감염 등등. AV라는 장르가 생긴 이래로 사건사고가 잊을 만하면 불거졌고, 그들이 입은 피해는 치유가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AV 업계에 대해 이렇다 할 제재가 없었던 것은 성진국이라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개인 문제에 간섭을 꺼리는 일본 특유의 문화와 더불어 성인물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에서 비롯한 방임이 컸다.
2016년 인권 단체 휴먼라이츠나우의 기자회견은 쌓이고 쌓인 폐단의 결정판이었다. 평범한 연예인으로 데뷔시킬 것처럼 계약한 뒤 위약금으로 AV 출연을 강요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촬영 사실을 알리겠다며 반복 촬영을 요구하는 사기 계약 사례가 있다고 폭로했다. 다음 해 미국 국무부 세계인신매매 보고서에 거론될 정도로 문제는 세계적으로 크게 주목받았고, 도쿄올림픽을 앞뒀던 일본 사회는 신경을 안 쓰려야 안 쓸 수가 없었다.
피해자 구제를 목표로 삼아 법조계와 교수, 업계를 중심으로 AV인권윤리기구가 세워졌다. 배우 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표준 계약서를 만드는 한편, 2018년 2월부터 2020년 3월까지 12,000여건에 달하는 판매 중지 신청을 접수했다. 기구가 어떤 공권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기구 권한이 대형 제작/유통사 위주로 미쳤음에도 말이다. (참고로 가장 많은 중단 요구 사유는 ‘출연으로 인한 사회적 차별’이었다고 한다.)
“본좌 가라사대, 너희 중에 컴퓨터에 야동 한편 없는 자 나에게 돌을 던져라.” 음란물유포죄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한 사람에게 사람들은 김본좌라는 칭호를 붙였고, 이렇게 본좌복음이라는 것까지 지어내며 내 고개를 숙이게 했다.
2000년대 초반 국내에서 돌아다니던 AV의 70%를 유통했다는 그는 선고 이후 본좌복음 대신 후회와 반성, 그리고 “네티즌을 고소하고 처벌해도 음란물 유통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그 말은 현실이 되어 제2, 3의 김본좌가 나왔고, 오늘날에는 본좌들 없이도 야동을 언제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다들 알면서도 숨겨야 했던 야동은 이제 방송에서 대놓고 농담거리로 언급할 수 있는 것이 되어버린 모양인데, 나는 성인물이 진정 이런 취급을 받아도 되는 건지 의문이다.
AV의 어두운 면을 지적하면 항상 반박이 공격적으로 뒤따라 나온다. 대한민국 정부와 사회는 성인이 누려야 할 성적 자기 결정권이나 성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으며, 성인물을 억압하면 할수록 성 개방성은 움츠러들 것이라는 이야기 말이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성과 관련된 여러 논의가 닫혀 있다는 점을 굉장히 답답하게 느끼고, 빡빡한 성인물 규제가 부질없다는 걸 인정한다. 포르노를 보거나 찍을 자유? 주장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성인물에 대해 반발하는 여론을 단지 성 보수주의자들의 난이라고 치부한다면 저 발언이 왜 사달이 되었는지를 제대로 헤아릴 수 없다고 본다.
성적 대상화와 성 상품화 같은 아마 영원히 따라다닐 비판은 차치하더라도, 한국은 어쨌든 AV 출연부터가 불법이고, 성인물 출연은 일회성이라고 해도 세계 어디서나 손가락질을 받는다. 무엇보다도 AV 산업과 함께 성장한 인권 착취 문제는 언제쯤 뿌리째 뽑힐지 알 수가 없다. 이런 현실과 속사정을 애써 외면한 채 AV를 비판 없이 수용하고 미화하려는 행태는 전혀 온당치 않다. 그러므로 AV 출연 발언을 편집하지 않은 건 상당히 부적절했고, 사과에 대한 항의는 이해 받지 못할 행동이다.
카메라 프레임 너머를 직시하고, 그 이면에서 부끄러움과 경계심을 느끼며, 선을 긋는 일. 성인물의 자유를 논하기에서 앞서, 이런 시선을 갖추는 것이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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