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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디시

인간의 확장

by 드파랑 2023. 4. 16.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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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이 고통이 된 커뮤니티 세상을 떠나며

 

이말년씨께

안녕하세요. 저는 드파랑이라고 해요.

 

기나긴 편지를 써내려가기 앞서 고백을 하자면 저는 당신의 팬이나 구독자는 아니에요. 당신이 만든 작품을 본 기억이라고는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를 재밌게 본 게 전부였어요. 저라는 사람은 어떻게 된 건지 젊은 사람들은 다 본다는 웹툰이나 라방에 관심도 없고 그런 걸 꾸준히 볼 참을성은 더더욱 없거든요.

 

그래도 당신이 웹툰만 아니라 지상파 예능 방송에도 나와서 많은 사람을 웃기고, 사람들이 당신의 개인방송을 즐겨 본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저 사람은 참 유쾌하고 재치 있고 사랑받는 사람이겠구나라는 생각은 했답니다.

 

이런 제가 당신께 편지를 쓰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그럼 왜 쓰냐고요? 언젠가 우연히 당신이 한 말을 어디선가 짤로 보게 되었는데, 그 말이 제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거든요. 그리고 저도 나름대로 느낀 바가 있어서 하소연을 하고 싶기도 하고요.

 

 

잘못된 만남

당신만큼은 아니더라도 저도 디씨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요. 다만 그곳에서 작가의 꿈을 이룬 당신보다는 좀 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까지는 웬만하면 디시를 멀리했어요.

 

그런데 스마트폰이 생기고 난 뒤로 제가 찾고 싶은 정보를 마구 찾아대다가 결국에는 ‘철도갤러리’에 발을 들이게 되었어요. 저속한 말만 어느 정도 걸러들으면 나름대로 지낼 만 했어요. 야갤(국내야구갤러리)이나 주갤(주식갤러리)처럼 유명 갤러리에서 볼 수 있는 막장성은 덜했고, 지리와 교통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알게 모르게 자주 눈팅을 하게 되었죠.

 

하지만 그런 평화는 디시에서는 비정상이었어요. 어느 날 갤러리에 노무현 합성 사진이나 이상한 애니메이션 사진이 한 두 개씩 올라오더니 몇 달이 지나서는 철도 이야기가 묻힐 정도로 도배를 해버렸어요. 관리자는 그런 것에 손댈 여유나 의욕이 전혀 없었고, 철갤 이용자들은 분탕을 피해 철갤을 탈출했어요.

 

마침 이 때쯤에 일개 이용자에게 관리 권한을 쥐어준 마이너 갤러리라는 것이 생겼어요. 그래서 몇몇 사람들이 마이너 갤러리를 대피소로 만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모노레일 갤러리’가 철갤의 정신적 후신으로 자리 잡았죠. 아무래도 적당한 통제가 있어서인지 이전 철갤보다 관심 있어 하는 주제에 관한 이야기가 더욱 활발히 오고갔어요. 철갤과 다르게 저는 거기서 고닉으로 활동하며 글도 쓰고 유대감도 어느 정도 들었는데...

 

하지만 그런 평화는 디시에서는 비정상이었어요. 전장연 사태로 거하게 뒤집어졌거든요. 뭐 불편하라고 시위를 했으니까 불편했을 수도 있고, 본인들이 사랑(?)하는 것의 정상적인 운행을 방해했으니 짜증나기도 했을 거예요. 근데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선을 넘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전장연에 대한 비난은 예사일 정도로 전장연과 장애인을 비하하고 혐오하는 발언이 쏟아졌어요.

 

그런 분위기에 화가 난 나머지 나는 반박을 한답시고 나섰는데, 당연히 될 리가 없었죠. 홀로 백 명을 상대로 싸우자고 한 꼴이었으니까요. 결국 저를 포함한 몇몇 사람이 사건이 한참 흐른 뒤에야 운영진에게 통제를 요청하고, 운영진은 약한 수준의 통제를 하는 선에서 사건이 일단락되었어요.

 

시간이 지나서, 철도 당국이 전장연에 악의적인 여론을 조성하려고 시도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어요. 저는 그것을 사족을 약간 붙여서 갤러리에서 실었는데, 그 글 싣고 얼마 안 돼서 운영진은 제게 7일 차단이라는 징계를 먹였어요. 여론을 선동한다고 했나? 내로남불이라고 했나? 이런 이유로 저를 사전 경고도 없이 차단해버렸어요. 운영진에게 몇 차례 주절주절 따져보기도 했는데, 돌아온 답은 복붙이었어요.

 

시답잖은 해명을 보면서 화나고 모욕감이 들었고, 감정이 가신 뒤에는 내가 왜 여기를 있어야 하지라는 이성적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결국 더러워서 탈갤했고, 그나마 긍정적으로 변해가던 디시에 대한 생각이 다시 부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었어요.

1년 전, 갤러리에서 징계를 받은 이후 항의하려고 한 관리자와 주고 받은 카톡. 지금 와서 다시 보니 화가 나기도 하면서 어차피 이야기도 안 들어줄 거 괜히 시간만 버렸다는 생각이 드네요.

 
 

완장의 굴레

그 갤을 뛰쳐 나온지 1년이 지났지만, 디시를 완전히 그만두지는 못했어요. 어쩌다가 마이너 갤러리 ‘파딱’이 되었거든요.

 

참 이상해요. 국내‘야구’ 갤러리는 허구한 날 정치 이야기로 불타던데 정작 각 잡고 정치를 주제로 하는 갤러리에는 글이 하루에 한 번 올까말까 하대요. 뭐 이해는 해요. 제 정치적 견해는 디시 주류 여론과는 정반대였고, 그 갤러리 또한 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만든 갤러리였으니까.

 

사람들이 많이 안 찾는 것은 어느 정도는 감수할 수 있지만, 이상한 사람들이 오는 것은 정말 힘들었어요. 배배 꼬인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꼭 험한 소리를 하고 가더라고요. 제가 지지하는 정당이나 사회적 소수자/약자 등을 향해 할 말 못할 말 가리질을 않았어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나중에는 당신이 좌파라고 손가락질 하고 다녔죠. 근데 좌파가 왜 욕이지?)

 

저는 부지런해서 그런 글을 보이는 즉시 빨리 삭제해서 나름대로 갤러리 수질을 깨끗하게 유지했어요. 그런데 그런 글들을 지우면서 얻는 나름대로의 쾌감(?)도 하루 이틀 일일뿐, 나중에는 지겨워졌고, 읽고 싶지 않은 글도 읽어서 얻는 상처를 피할 수는 없더라고요. 그리고 아무리 삭제와 차단을 해대도 집요하게 올리는 사람, 갤러리 방침이 이렇다고 설명을 해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니, 완장질한다니 같은 어거지를 늘어놓는 사람들은 더 큰 스트레스를 줬어요.

 

나와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이 모였으니까 즐겁게 소통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마이너 갤러리에 들어갔고, 다른 사람들이 소통을 잘할 수 있도록 즐거운 마음으로 완장을 찼는데, 그게 안 되니까 점점 지겨워지더라고요.

 

그리고 언제부턴가는 일베인지 실베인지 뭔지도 제 머리를 아프게 하더라고요. 거기는 뭔 허구한 날 야한 것, 거짓 정보, 선동 글만 올라오데요. 어쩌다 혹해서 거기에 올라온 글을 읽었을 때는 댓글 수준이 게시물 수준보다 더 처참해서 머리가 두 배로 아프더라고요. 시간이 흘러서는 갤러리 대문 앞에 걸린 실베 딱지만 봐도 불쾌했어요.

 

 
 

디시가 망쳐놓은 인터넷 세상

갑자기 문득 제가 인터넷 세상을 처음 접했을 때가 떠오르네요. 막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윈도우즈 98이 깔린 컴퓨터 앞에 앉았을 때는 정말 신세계였어요. 누가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컴퓨터라는 것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알고 싶어서 컴퓨터 책도 직접 사서 읽고 방과 후 수업을 아주 성실히 출석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은 어디 낡아빠진 PC방로 아이들을 데려가더니만 이상한 사이트를 가입하게 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라고 권하셨어요. 이것을 채팅이라고 부른다고 하면서요. 어린 시절 저는 지금보다 수줍음이 많았는데도 금세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걸로 기억해요. 그것이 랜덤채팅인 줄도 모르고 말이죠. 이렇게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서로 이야기를 많이 주고받으면 세상이 참 행복해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기대는 저같은 철부지뿐만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걸 만든 사람들,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도 했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것이 개꿈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고인드립, 패드립, 진영 논리, 가짜 정보, 뒷광고, 혐오/차별 발언, 선동, 집단 괴롭힘 등등해서 많은 것들이 눈과 귀를 어지럽히고 있어요. 상대방을 향한 욕설과 조롱은 애교로 보일 정도죠. 그리고 희한하게도 언제부턴가는 축구를 주제로 하는 커뮤니티도, 여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커뮤니티도 차마 정치라고 말하기 아까운 것들로 커뮤니티 안팎에서 패싸움을 벌이죠.

 

도대체 누가 인터넷을 격투장으로 만들었을까요? 물론 인터넷에서 패악질부리는 다수라고도 소수라고도 할 수 없는 분탕들도 책임이 있기는 하겠죠.

 

그러나 저는 방종을 자유라고 박박 우기며 분탕들이 설칠 판을 깔아준 디시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봐요. 앞서 우리 눈과 귀를 어지럽힌 것들을 방관한 게 디씨였고, 그 문화는 커뮤니티가 활성화 되던 시점에 디씨 바깥으로 나가서 우리나라 커뮤니티의 국룰이 되다시피 했어요.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없는 현재에는 현실 세계 여론마저 양극화시키고 있죠. 그럼에도 우리의 디씨는 잘못을 고칠 기색이 전혀 없어보여요. 하긴 이용자 간 정치적 갈등으로 사람이 죽었을 때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넘어간 회사가 뭘 더 할 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

 

 

커뮤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더 큰 세상으로

제가 디시에서 여러 수난을 겪다보니 활동할 의욕이 떨어졌고, 당신이 한마디 일침을 놓은 뒤로는 아예 디시를 떠나기로 했어요. 올해가 오기 전부터 3 1일에 떠난다는 계획을 세우고, 2월에는 관리자직을 내려놓는다고 갤러리에 알렸죠. 발길을 끊은 며칠 간은 살짝 허전했는데, 지금은 익숙하면서 오히려 편하기도 해요. 짐을 내려놓은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인터넷에서 소통을 아예 끊겠다는 것은 아니에요. 제가 만든 이 블로그에 좀 더 신경을 쓸 생각이에요. 사람은 하루에 한 자릿수 정도 들어오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글을 자주 못 올리는 게 흠이지만 상관없어요. 쓸데없는 아무 말 대잔치는 줄이고, 생각을 신중하고 깊이 있게 다듬어서 주장하는 데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사적이고 은밀한 이야기는 사람을 오프라인에서 만나서 얼마든지 하려고요. 다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건 잘 모르겠네요. 

 

당신이 한 달 휴식을 지나 다시 개인방송을 시작한지도 며칠이 지나간 걸로 알고 있어요. 당신의 깊은 속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그 동안 당신이 겪었던 일을 미뤄보면 소통이 고통이 된 인터넷 세상이 당신을 지치게 한 데 큰 요인이었다는 정도는 짐작할 수 있어요. 그래도 꿋꿋이 돌아와 사람들과 소통하는 정신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매사에 부정적이고 꽉 막힌 사람이거나 저처럼 심약했다면 다시 돌아와 소통을 이어가는 일은 불가능하니까요.

 

저는 당신이 앞으로도 활발히 활동했으면 좋겠어요. 당신 같은 사람이 많아져야 이 시궁창 같은 인터넷 세상이 제가 꿈꾸던 세상으로 변할 테니까요. 그때 되면 사람들은 서로를 존중하며 자유롭게 의견을 펼칠 거고, 저는 맘 놓고 커뮤질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항상 당신을 응원할게요! 화이팅!

 

2023년 4월  

드파랑 드림

 

영화 <트루먼 쇼> 장면 중 일부. 우리는 트루먼처럼 조작에서 벗어나 진실된 세상을 찾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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