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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 때문에 더욱 더웠던 올여름 이야기

이불

by 드파랑 2025. 9. 1.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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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바다, 워터파크, 풀빌라... 여름철에 어느 곳이 피서지로 적절한지 싸울 때, 사람들에게 내게 묻는다면 나는 사무실을 꼽겠다. 에어컨 바람으로 항상 시원한 사무실 놓고 물놀이하러 온 사람들로 바글바글해서 정신없는 그런 곳을 왜 가느냐 이 말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올여름에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피서는커녕 안 그래도 손꼽히게 무더운 날씨에 취업 준비까지 하려니 여름나기가 참 버거웠다. 날씨로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나 시기상으로는 끝난 여름은 보내고, 구질구질하고 끈적끈적하게 올여름을 보낸 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행정학 받고 행정법에 헌법까지!

올해부터 공기업 취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면서 그에 대비한 공부가 필요했다. 서류 전형에 필요한 스펙은 어느 정도 갖췄으니 다음 단계인 필기시험을 준비할 차례였다.

 

보통 웬만한 대규모 공기업은 이걸 주어진 시간 안에 풀라고 만들었는지 의심스러운 기초능력평가와 함께 전공 평가도 본다. 기초능력평가는 딱히 공부할 거리가 없는 데 반해, 전공시험은 많은 공부가 필요했다. 내 대학 전공은 전공시험에 주로 활용되는 과목인 경영/경제/행정/법학 중 이 어느 하나에도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처음부터 공부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 셈이었는데, 수포자인 내가 경영이나 경제를 고르는 것은 제 손으로 무덤 파는 일이었고, 법학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 내 복수전공 정치학과 가까운 행정학! 너로 정했다!

 

하지만, 쉽게 생각한 행정학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교재를 펼치니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개념들이 많이 나와서 당황했다. 예전에 짤막짤막 공부한 경영학과 겹치는 부분이 제법 있었고, 뭔 놈의 사람이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공부에 도움이 되리라 기대했던 전공 지식은 큰 도움이 못 됐고, 결국 교재를 여러 번 읽는 수밖에 없었다.

 

행정법은 나를 정말 미치게 했다. 동생이 합격 기운(?)을 담아 내게 물려 준 공무원 행정법 책은 뭔가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안 된 것 같았다. 키보드를 내 딴에는 빠르게 두들겨 봐도 그 내용을 온전히 요약하는데 1주일 넘는 시간이 지나갔다. 하루에 몇 시간씩 컴퓨터를 붙잡고 생소한 개념들을 정리하려니 진이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며칠이라는 시간이 따로 필요했다.

 

여기에 어떤 기업(도로공사라던가, 도로공사라던가, 도로공사라던가)은 법정이라는 이름으로 행정학과 법학을 동시에 시험 봐서 헌법을 따로 또 공부해야 했다. 헌법은 기출 문제만 푸는 것으로 학습을 시도했는데,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았다. 문제가 판례 위주이기는 했지만, 어차피 나오는 내용이 거기서 거기라 몇 번 풀면 감을 잡았다. 내가 잘 못 외어서 그렇지. 정치 영역과 관련된 문제는 학교 다니면서 정치학을 공부할 때 기억을 되살려 술술 풀었다.

내가 직접 만든 행정법 요약집. 열흘 간 땀 흘리며 만들었는데 투입한 시간 대비 그렇게 효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중고 헌법 문제집을 구매하려고 했는데 취준생이라는 이유로 책을 그냥 주시며 선뜻 호의를 베풀어주신 분도 있었다. 너무 고마웠었고 상태도 괜찮아서 좋은 기분으로 공부했다.

 

 

시험의 무한 지옥

6월 15일 KBS한국어능력시험을 시작으로 시험의 무한 지옥이 펼쳐졌다. 한능시를 보고 난 뒤 다음주에는 소상공인진흥공단 시험이 있었고, 그 뒤로 한국토지주택공사, 도로공사, 한국언론진흥재단 순으로 이어졌다. 빡빡한 시험 일정 탓에 다른 시험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기도 했다. 취준 기간 동안 이렇게 바빴던 적은 없었다.

 

일정이 빡빡한 것도 빡빡한 거지만, 서울에 있는 시험장에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 또한 힘들었다. 입장 시간에 맞춰 들어가려면 새벽 5시 반에 6시 사이에 일어나야 했고, 항상 알람보다 30여 분 일찍 일어났다. 그나마 해가 빨리 떠서 덜 졸리기는 했고, 이른 시간에 시험장에 가니 따가운 햇볕을 덜 받았다는 게 위안거리였다.

 

6월부터 시험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느라 시간이 부족해서인지, 내 노력이 부족해서인지 몰라도 행정학 전공 시험 성적은 반타작을 살짝 웃도는 데 그쳤다. 그 더위 속에서 공부해서 얻은 결과물이 시원치 않아 속상했지만, 뭐 어쩌겠어. 여름에 아무 곳도 못 붙었으니 가을에도 공부해야겠지?

채용 과정에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섬세함이 돋보였다. 위로하는 문장을 여러 차례 쓰면서 시험 불합격한 사람에게 최대한 상처 안 받도록 했고, 결과를 메일로 따로 보내줬다.

 

도로공사는 자신들의 채용 절차를 공채가 아닌 '인재영입'이라고 칭했는데 이름만 바뀌었을 뿐 채용 틀과 절차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 심사가 취준으로 너무 꼬여서 그랬는지 저 단어 보면서 속으로 온갖 험한 말이 나왔다.

 

한국토지주택공사 수험표. 언제부턴가 나는 내 책상에 붙은 응시생 스티커를 수험표에 붙이는 습관이 생겼다.

 

 

옛날에는 가장 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가기가 가장 두려운 곳

시험의 무한 지옥에 마침표를 찍은 곳은 다름 아닌 KBS였다. KBS가 어디인가? 대한민국 대표 언론이자 공영방송사 아닌가! 언론인 지망생이 붙으면 한없이 영광스러운 그곳.

 

그런데 필기시험을 볼 자격이 주어졌다는 기쁨은 잠깐이었다. 오히려 그곳에 붙으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들었다. 내가,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꿈, 기자. 그 꿈을 이룰 기회가 주어졌는데, 나는 어느 때보다도 주저하고 있었다. 다른 곳은 본사 위치를 지도로 검색해 보며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는데.

 

기자에 대한 회의는 대학에서 예비 언론인으로서 꿈을 키울 때부터 따라다녔다. 워라밸이 잘 지켜지지 않는 근무 환경에 비해 썩 좋지 않은 내 건강 상태, 기자라면 으레 생각하는 이미지와 달리 인간관계 관리와 술자리가 중요한 업무 특성, 날로 갈수록 떨어지는 직업에 대한 평판 등을 보며 기자가 정말 내게 맞는지 여러 번 고민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그걸 감수해서라도 해봐야 한다며 생각을 마무리 지었다. 애초에 세상에 안 힘든 직업은 없으니까.

 

몇 달 전에 어떤 공기업의 홍보 담당자 공채를 준비하면서 읽게 된 홍보 관련 책은 나를 또다시 시험에 빠뜨렸다. 책은 드문드문 알고 있는 기자의 생활이라는 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채로 내게 “야 정말 이래도 할 거냐고? 할 거냐니까?”라고 물었고, 내 답은 선뜻 나오지 않았다. 마침, 나이가 이제는 정말 턱밑까지 차오를 대로 차오르고 있었고, 공기업 취업에 열을 쏟느라 머릿속에는 언론인이 된 나보다 공기업 회사원으로서의 내가 더 자연스러웠다. 나는 그때 느꼈다. 기자에 대한 열망과 열정이 확 식었다는 걸.

 

이게 마지막 언론사 시험일 수 있겠다는 생각 속에 고사실을 나설 때쯤, 내 옆자리에 있던 사람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나를 붙잡았다. 시험 중간에 컴퓨터 사인펜을 주워준 게 기특해서였는지 나를 겸상 상대로 간택한 모양이었다. 그는 내가 보기보다 훨씬 나이가 많다며 놀랬지만, 놀란 그도 무슨 나이로든 나와 같은 30대여서 그또한 나이를 적잖이 먹은 셈이었다. (나는 내가 동안이라는 것보다도 사람을 속였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끼는 이상한 심보가 있다.)

 

늦은 나이에 막 중소 매체에서 일하는 그 또한 취업 전에 생각했던 것과 다른 기자 생활을 몸소 겪고 있었다. 규모가 규모다 보니 영업에 대해 많은 신경을 써야 했다고 했다. 그런 현실에 현타가 올 법 한데도 계속해서 기자의 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최근에는 지역 지상파 방송사와 굴지의 경제지에서 최종 면접 단계까지 올랐고, 거기까지 오르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한듯 했다.

 

아무래도 처지가 비슷해서인지 이야기를 나누며 속풀이 하는 느낌이었고, 서로는 서로를 향해 스펙은 물론 내 손 글씨까지 별의 별 것을 추켜세웠다. 말의 성찬과 홀가분한 기분에 취한 나는 생애 처음으로 낮술을 한잔 걸쳤다.

 

그렇게 우리는 면접장에서 볼 것을 약속하며 전철에서 서로 갈 길을 찾아 떠났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

 

한국방송은 취재기자를 전국권(서울 본사)과 지역권(각 지역총국)으로 나눠 뽑고, 나는 충청강원권에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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