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년 만에 면접을 봤다. 5시 45분에 일어나는 것이 고역이었음에도 면접장 가는 길은 참으로 새로웠다. 오죽하면 피곤함에 찌든 직장인들을 싣고 나르는 출근 시간대 전철을 타고 면접장 가는 동안에 왠지 모를 설렘을 느꼈을 정도로.
면접은 그럭저럭 봤다. 답변은 그 자리에서 최대한 순발력 있게 짜냈고, 실수는 안 할 수 없으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결과는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에 따라 하늘에 맡길 뿐이다.
그런데 노처ㄴ... 총각이 결혼을 하려면 등창이 난다고, 면접장 바깥에서 예상치 못한 이런저런 소동이 벌어졌다. 그 일들은 내가 그만큼 구직에 허송세월했음을 알게 해주는 것들이었고, 이런저런 감정이 머릿속을 오고 갔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 뒤 정장을 입었다. 면접 날에 물 흐르듯이 입기 위한 연습이었다.
초여름 날씨라는 소리를 듣고는 와이셔츠를 반소매로 고르고, 친구가 사준 넥타이는 몇 번 메다 풀어서야 멋있게 메였다. 이제 바지를 입으면 되는데... 어? 안 들어가!
약 한 달 전, 병원에서 신체 치수를 쟀다. 신장은 눈에 익은 숫자가 찍혔는데, 몸무게는 생전 처음 보는 76kg이라는 숫자가 나타났다. 놀란 마음에 주변 사람들에게 이 사건을 알렸는데, 진심인지 위로인지 의도를 알 수 없는 말들이 나왔다. 별로 안 쪘다는 둥, 남자는 살집이 있어야 한다는 둥.
이 바지를 입으며 사람들 반응이 왜 미적지근했는지 알 것 같았다. 상의는 그럭저럭 입었는데 바지가 막힌 것 봐서는 살들이 다 가슴 아래 특히 다리에 쏠린 모양이었다. 숨 참고 러브 ㄷ... 간신히 입은 바지는 레깅스가 돼버렸다.
이 옷을 처음 샀을 때가 떠올랐다. 체중 앞자리가 5와 6 사이를 넘나들던 당시, 점원은 내 체형에 딱 맞는 정장을 추천하고, 아버지는 이것보다 두세 치수는 더 큰 걸 사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남 제비같이 꾸민 점원과 한때 강남 제비처럼 꾸몄었던 아버지 사이 신경전에서 내 판단은 점원 쪽에 좀 더 기울어 있었다.
고등학교 입학 전에 180cm까지 우상향 성장하는 장밋빛 앞날을 그리며 교복을 맞췄지만, 170cm에서 멈춰 버린 바람에 3년 내내 헐렁헐렁한 채로 입고 다녔던 기억이 일단은 떠올랐다. 그런데 한쪽 편만 들기에는 난처하면서 언젠가는 불어날 다리 살집을 생각 안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 치수 늘려 정장을 샀는데, 아버지는 나중에 가면 못 입을 거라고 장담했다. 교복 샀을 때 아버지 말이 맞았다면 그때도 아버지 말을 따랐을 텐데 하는 생각이 지금 든다.
시청에서 지원하는 정장 무료 대여는 시간이 촉박해서 근처 매장에 가서 정장 바지를 새로 샀다. 반들반들한 상의와 달리 새 바지는 꺼끌꺼끌했고, 같은 남색이어도 색깔은 상의가 더 짙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공고문에서 비즈니스 캐주얼을 권한다는 말에 정말 입을 지도 검토해 봤지만, 왠지 면접자들은 죄다 정장 입고 올 것 같았다. 고심 끝에 짝짝이 정장을 입었고, 예상은 적중했다.
11시를 조금 넘긴 시간, 뭐 먹을까 검색하다가 일식이 눈에 들어왔다. 을지로입구역과 을지로3가역 사이 지하통로를 왔다 갔다 하며 헤맨 끝에 들어간 곳은 타마고.
일본을 한 번도 간 적 없어 현지 텐동이 어떤지 잘 모르긴 하지만, 내가 먹어 본 텐동 중에서는 가장 현지식에 가까워 보였다. 튀김은 바삭바삭한 데다가 종류가 다양했고, 장국에는 이런저런 야채 건더기와 고깃덩어리가 들어 있어 왠지 모를 정성을 느꼈다. 반찬도 공장제 단무지나 절인 생강 같은 거 말고 드레싱을 줬다. 이렇게 정성을 들였는데도 가격은 11,000원만 받아서 만족감이 더 높았다. 좁은 매장에 좌석이 많지 않아서 불편함에도 줄 서서 먹는 이유가 있었다. 만약 을지로 일대에서 점심에 가볍게 한 끼 하고 싶다면 이곳을 추천한다. (평일 점심시간에만 문을 열어서 저녁에는 먹을 수 없다.)
나는 혼자 온 주제에 한 공기를 더 먹으며 줄 서는 사람 애를 태우고 있었다. 그리고 먹는 동안 어쩌다 보니 옆자리 사람들과의 대화도 엿들을 수밖에 없었다.
식당 근처 대기업에서 일하는 30대 중후반 여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그 나이대 주된 주제인 자식 이야기를 나눴다. 선임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영어유치원에서 원어민과 수업하는 얘기, 그림 같은 걸 보여주면서 천재성을 논하는 얘기, 다른 사람이 자식에게 얼마나 투자하는지 나누는 얘기를 늘어놓았다. 강남에만 있을 것 같은 제이미맘을 강북 한복판에서 만날 줄이야.
제이미와는 정반대되는 어린 시절을 보낸 나로서는 이 땅 위 제이미맘들이 하는 행동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린이는 그 어린이만의 삶이 있고, 방임하지 않는 한 알아서 잘 큰다. 아이를 위한답시고 하는 투자라는 것이 아이에게 안 맞을 수도 있다. 나는 좀 과하게 겪었던 좌절과 결핍은 적절하면 오히려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경험은 사회 통념과는 다르고, 배우자로 만나게 될 사람 또한 통념에 동조할 수 있다. 그것이 충돌했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고민이 깊어질 때쯤 나는 길어진 줄을 보고는 밥공기를 재빨리 비우고 자리를 박찼다.
밥도 먹었겠다, 어쨌든 정장도 갖춰 입었겠다, 나는 어느 때보다도 당당하게 걷고 있었다. 교보문고 사거리로 가려고 지하통로에서 나온 뒤 청계천을 지나치려는데... 어? 신발에 뭐가 불었나?
뭐가 붙은 것이 아니었다. 오른쪽 뒷굽은 갈기갈기 찢어져서 덜렁덜렁했고, 걸음걸이에 지장은 없었던 반대쪽 뒷굽도 살짝 패여 있었다. 아껴 신어서 반짝반짝 빛나던 앞굽과 달리 뒷굽은 처참히 낡아가고 있었던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 구두로 말할 것 같으면, 공익, 즉 사회복무요원으로 11년 전에 소집되고 나서 받은 제복의 일부분이었다. 공익할 때 공익복은 그런대로 챙겨 입었지만, 구두는 좀체 손을 타지 않았다. 평발이 하도 심해서 공익 간 사람에게 구두는 쥐약인 데다가 근무지에서는 구두까지 갖춰 입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신발장 구석에 웅크리던 구두는 구직을 시작하면서 의도치 않은 외출을 하게 되었다. 어디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구두는 발보다 커서 헐렁거리고, 평발을 잡아줄 어떤 장치도 없어 불편했다. 그래도 없는 살림에 새 구두를 살 수 없었던 데에다 정장과는 딱 어울려서 그래도 만족하며 신고 있었다. 그렇게 대전, 서울, 세종, 수원, 안동, 원주, 음성 등등. 일자리를 찾아 전국을 함께 누볐다.
집에 돌아온 뒤 수거함에 넣을 옷가지들을 모으려고 하는데, 이상하게 구두가 손에 닿지 않았다. 아까움, 첫 구두, 첫 면접(마침 내가 면접 본 곳은 내 첫 면접과 같은 회사였다.)... 순간 스친 여러 생각은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나는 그 구두는 쓸모가 다했음을 앎에도 신발장 구석에서 잠시 웅크릴 시간을 줬다.
천안으로 돌아왔지만 바로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면접 사진 찍기라는 과제가 남아 있었다. 정장을 갖춰 입은 날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계획을 진작에 세워뒀는데, 마침 머리도 새로 하고 화장(이라고 해봤자 파운데이션이 전부였지만)도 해서 사진 찍기 더없이 좋은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안청년센터에서는 청년 대상으로 면접 사진을 지원해 주고 있었다. 무료인 데다가, 면접 전날 오전에 한 신청이 몇십 분 만에 받아들여져 신청 접수가 안 되면 어떨지 조마조마하지 않아도 됐었다. 왠지 기분이 좋았고 고마웠다.
그동안 나는 이력서를 낼 때 8년 전 대학 취업 박람회에서 찍은 사진을 붙였다.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얼굴은 멀끔해 보이기는 하는데, 자세히 보면 사진 잘 찍지 않는 티가 구석구석에 보였다. 웃어보세요, 눈 크게 뜨세요, 어깨 펴세요, 턱 집어넣으세요, 정면 보세요... 인내심 깊은 사진사의 수많은 주문이 없었다면 사진은 더 보잘것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날 사진사는 주문을 서너 차례 내놓고는 사진 여러 장 중 하나에서 고르게 한 뒤 보정 처리를 하고 실물 사진을 건네주기까지 모든 과정을 10분 안에 끝냈다. 사진사는 기계 같았고, 결과물은 패스트푸드같았다. 포트샵으로 집어 넣은 하늘색 배경에 양악 수술한 듯 매끄러운 턱선과 피부에 잡티 하나 없는 사진 속 나는 영락없는 단정한 취준생이었으나 당최 나 같지가 않았다.
잘생겼다, 이것보다 더 멋있게 나올 수는 없다는 평에도 마음에 썩 들지 않았다. 게다가 사진 군데군데에 오점이 눈에 띄었다. 정 마음에 안 들면 사진사에게 수정을 요구하라는 말도 들었지만, 결국 그러지는 않았다.
그 사진은 이미 내 손을 떠난 것 같기도 하고, 고친다 한들 크게 나아질 것 같지도 않았다. 그 사진은 엉성한 솜씨로 본 모습을 숨기고 꾸민 취준생으로서 나를 남긴 셈 치고 놔두기로 했다. 그저 이 사진이 다른 이력서에 쓰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사진이 맘에 안 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번 면접에 제발 좀 붙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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